사라지는 동해 백사장·파괴된 맹그로브 숲 배경으로 노래
'예능 비주류' 환경 소재로 한 드라마X음악 컬래버
지구 거주 불능 미래 인류 그린 '지구 위 블랙박스' 공개
2023년 녹아내리고 있는 남극의 빙하 앞에서 그룹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이 대표곡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열창한다. 녹아내리는 빙벽이 만드는 무시무시한 굉음이 고스란히 들려온다. 이 영상을 시청하는 건 2054년 지구의 '블랙박스' 센터의 기록자 윤(배우 김신록). 그는 2049년 이미 환경 파괴로 인류 거주 불능 상태가 된 지구에 머무는 유일한 인류다. 현재와 과거의 지구 상태를 보고 인류의 지구 복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과연 인류는 지구와 다시 공생할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KBS가 9일 아티스트들의 콘서트와 드라마가 절묘하게 섞인 4부작 대기획 '지구 위 블랙박스'를 공개한다. 황폐화된 지구 곳곳을 카메라로 비추면서 연예인의 내레이션이 깔리는 기존 환경 다큐멘터리의 틀을 깨기 위한 시도다. 최정훈을 비롯해 윤도현, 김윤아, 걸그룹 르세라핌 등이 국내외 환경 파괴 지역을 배경으로 노래하고, 미래의 인류는 배우 김신록과 김건우, 박병은이 연기했다.
액자식 구성에 '블랙박스'란 독특한 소재는 그간 비주류로 분류돼 온 환경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에서 시작됐다. 구민지 PD의 전작인 '오늘부터 무해하게' 역시 배우 공효진이 탄소중립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었지만, 시청률은 1%대에 머물렀다. 구 PD는 "환경 문제는 관심을 가질수록 선명한데, 지구는 '지옥행 열차'를 탄 상태"라면서 "가수의 노래와 배우의 연기로 감정을 울리려고 했고 '이래도 안 보실 거냐'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블랙박스'는 호주의 한 연구팀이 추진한 인류의 마지막 흔적을 담는 '지구 블랙박스' 프로젝트에서 힌트를 얻었다. 드라마와 음악의 결합이란 이색적인 시도는 대본을 쓴 천선란 SF 소설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아티스트들의 무대는 환경 파괴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지구다. 지난해 폭염과 산불로 한 달 내 2,000명이 사망한 스페인 사모스, 파괴되고 있는 태국 맹그로브 숲 등이 배경이다. 콘서트 구성에서도 환경 메시지를 담았다. 윤도현은 물이 서서히 차오르는 수조 안에서 '흰수염고래'를 열창한다. 기후 변화에 따라 상승하는 해수면에 대한 경고를 표현했다. 윤도현은 "평소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정수기 설치 등 실천하고 있었지만, 이번 기획에 참여하며 환경 운동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고 회상했다. 당시 윤도현은 암 투병 중이었지만 제작진에게 알리지 않고 고난도 촬영을 진행했다.
"작품 참여만으로도 중요한 실천이라고 생각했다"(김신록), "경각심을 갖게 하는 파격적 시도"(김건우) 등 공익적 목적에 뜻을 모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이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역시 얼마나 '흥미' 가 있느냐다. "환경 다큐멘터리가 아닌 아티스트의 퍼포먼스가 주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동시에 황폐화된 지구에서 지금 2023년의 영상을 꺼내 보는 장면이 주는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느끼셨으면 합니다."(구민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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