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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훈의 잃어버린 명예

입력
2023.09.26 19: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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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9월 21일 서울 곰달래 문화복지센터에서 열린 동행 서약식에서 국민의힘에 입당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을 축하하고 있다. 뉴시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9월 21일 서울 곰달래 문화복지센터에서 열린 동행 서약식에서 국민의힘에 입당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을 축하하고 있다. 뉴시스

어떤 변심은 분노를 넘어 기막힌 감정을 동반하기도 한다. 신지예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국민의힘 입당이 그랬다. 대선 경쟁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 20일, 느닷없이 ‘신지예가 국힘에 입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처음엔 온라인 커뮤니티발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며칠 전까지 국민의힘을 강하게 비판했던 그였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페미니스트 정치인의 대표 주자였던 신지예가 20대 남성들의 지지를 한창 얻고 있는 국민의힘에 입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영입한 쪽도, 응한 쪽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예상대로 청년 남성들의 거센 반발이 뒤따랐다. 그는 결국 아무 일도 해보지 못하고 물러났다.

당적을 바꾼다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당을 위해 충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백번 양보해 얼마 전까지 욕한 정당이라 하더라도 전략적으로 입당을 결정할 순 있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몸담았던 곳에 아무런 채무가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신지예 전 위원장은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막 기지개를 켜던 녹색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에 20대 여성을 파격적으로 공천함으로써 당의 자산과 기회를 몰아줬다. 덕분에 그는 과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대표적인 청년 여성 정치인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은 종종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혼자만의 능력과 노력으로 올라간 자리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변심은 그런 착각에서 시작된다. 당시 신지예를 향한 진보 진영의 분노는 거기에서 비롯됐다. ‘없는 살림에 밀어줬더니 우리를 배신하느냐’는 것, 그건 마치 산업화 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아들에게 집안 일으켜 세우라고 누나와 여동생들이 공장에서 번 돈 모아 학비 마련해줬더니 성공한 뒤에 가족을 배반한 것과도 같았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의 국민의힘 입당 결정은 신지예의 입당과 닮은 구석이 있다. 조 의원은 지난 21일 국민의힘 합류를 선언했다. 이로써 ‘생활 진보 플랫폼’을 표방한 시대전환은 국민의힘 식구가 됐다. 그가 1인 정당을 이끌며 느꼈을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구성원들의 생계도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녕 그랬다면 그가 시대전환을 이끌고 들어갔어야 했던 곳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자신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준 더불어민주당이어야 했다. 시대전환이 창당 당시 내건 기본소득제, ‘남북한 좋은 이웃론’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곳도 민주당 아닌가. 그는 “변한 건 민주당”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조국 사태와 명분 없는 위성 비례 정당 창당으로 비판받던 당시의 민주당이 지금과 뭐가 달랐는지도 모르겠다.

조정훈 의원은 시대전환 창당에 함께하고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이들과의 신의를 저버림으로써 누군가에겐 새로운 정치를 향한 도전이었을 시대전환 창당을 ‘비례대표 공천용 떴다방’으로 만들어버렸다. 시대전환 지지자들이 그에게 모아주었던 기대와 열정은, 적어도 국힘 입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가 국민의힘에서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이번 결정에 실망한 시대전환 지지자들의 신뢰와 긍지는 되찾을 수 없고, 잃어버린 명예는 온전히 그의 몫이라는 점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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