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7나노 공정 칩으로 제재망 무력화
"애플 수준의 반도체 빅테크 대열 합류"
미국 "대량생산 능력 없다"면서도 견제
"미국이 중국 반도체를 압박할수록 기술 향상에 대한 중국의 결의와 능력만 향상시킬 뿐이다."
21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미국 '반도체·과학법' 시행 1년에 맞춰 내놓은 보도다. 중국 정보통신(IT) 대표 기업 화웨이는 미국 제재망을 따돌리고 7㎚(나노미터·10억 분의 1m) 칩으로 만든 최신형 스마트폰을 내놨고, 중국 반도체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부품 자체 조달 시스템을 구축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이 '반도체 자력 생산'에 다가서고 있는 흐름이 확인되면서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에서 중국이 일단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현지시간) 전문가들을 인용해 "화웨이가 미국 기업 애플처럼 자체적인 프로세서 반도체 설계가 가능한 소수의 빅테크 대열에 합류했다"고 평가했다. 화웨이가 지난달 출시한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60프로'에는 '기린9000S' 프로세서가 탑재됐는데, 2018년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에 사용된 칩과 동급의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지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 기술 의존도 낮은 반도체 설계 돌파구 마련"
FT에 따르면, 기린9000S에 내장된 중앙처리장치(CPU) 8개 중 4개가 화웨이 자화사 하이실리콘이 자체 설계한 제품으로 파악됐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신경망처리장치(NPU)도 하이실리콘 제품이다. 반도체 컨설팅회사 세미어낼리시스의 딜런 파텔 수석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외국 기술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칩 설계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전문 조사기관인 테크인사이츠의 댄 허치슨 부회장은 미국 CNBC방송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없이도 기술적 진보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7nm 공정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 노광장비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네덜란드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정책에 호응해 중국 수출을 중단했지만, 중국이 만만찮은 실력을 입증한 셈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접근을 막았다. 14나노 이하의 첨단 반도체를 중국에서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게 초점이었다. 2019년엔 화웨이에 5G 반도체의 수출과 관련 기술 이전을 금지했고, 2020년에는 미국산 부품 수출 절차를 강화했다. 지난해 10월엔 중국 반도체 생산기업에 대한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했고 인공지능(AI)에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 수출을 제한했지만, 중국에 치명적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런정페이 "애플은 나의 선생님" 여유만만
중국은 반도체 장비 국산화에 집중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YMTC가 미국 램리서치가 생산한 핵심 부품의 대체품 개발을 위해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램리서치는 지난해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조처 발동 뒤 중국 고객사들에 대한 서비스 공급을 중단한 바 있다. YMTC는 '반도체 굴기'를 다짐한 중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2016년 설립됐다. 미국의 집중 공격을 받았지만 "미국의 규제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협력을 촉진하고 있다"고 SCMP는 지적했다.
중국 언론들은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의 의미심장한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는 20일 열린 한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미국 애플을 "배우고 비교할 기회를 준 교사"에 비유하며 "그런 점에서 나는 애플의 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에 대해선 "(기술 개발의) 동기를 부여했다"며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런정페이의 딸이자 화웨이 순회 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는 오는 25일 또 다른 스마트폰 신제품을 직접 공개한다. 25일은 멍완저우가 이란 제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캐나다에서 억류됐다가 귀국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화웨이의 부활'을 한껏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긴장한 미국 "중국에 1센트도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것"
다급해진 미국은 제재망 추가 조이기에 나섰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19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의 가드레일(안전장치) 최종 규정이 "몇 주 내로 완성될 것"이라며 "단 1센트의 지원금도 중국이 우리를 앞서가는 데 도움 되지 않도록 바짝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도체법 가드레일이란 미국에서 투자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10년간 중국‧러시아 등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5% 이상 늘리면 보조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화웨이가 미국 제재망을 뚫어낸 것이냐는 질문에 러몬도 장관은 "중국이 7나노 칩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화웨이가 7나노 공정 프로세서 개발에 성공한 것은 맞지만 사양이 낮은 부품을 사용해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이 낮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풍긴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화웨이의 7나노 칩 수율이 50% 이하일 것으로 예측한다. 생산하면 할수록 손해는 보는 구조여서 대량생산에 실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개발 후발주자인 중국이 7나노 기술을 습득한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라고 했다. 다만 "실제 수율이 낮은 제품을 출시한 것이라면 실질적인 반도체 생산 자립이나 굴기를 달성했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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