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직 연방판사, 정신 건강 문제로
동료 판사와 소송 끝에 직무 정지돼
80·90대 정치인 고령화 이슈로 떠올라
미국 공직사회에 ‘고령화의 그늘'이 드리웠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연방법관의 종신 임기제에 따라 96세까지 자리를 지킨 판사는 정신 건강 문제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 5선 이상 의원들이 즐비한 의회에서도 일부 고령 의원의 인지 능력이 구설을 샀다. 조 바이든(81)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77) 전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도 유권자들의 걱정거리다.
“그만 두라”는 동료와 소송전 벌인 ‘종신직’ 판사
“96세의 폴린 뉴먼 판사는 법원에서 39년 동안 일한 ‘미국 특허 시스템의 영웅’이자 ‘가장 사랑받는 동료’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올해 초 이후 그가 직무를 수행할 만한 상태인지에 대한 의심이 커졌습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은 1984년 임용돼 현직 미국 판사 가운데 최고령인 뉴먼 판사에게 1년간의 정직 처분을 내리며 이같이 밝혔다. 뉴먼의 동료 판사들은 “판결을 내리기에 적절치 않은 정신건강 상태”라면서 올해 4월 그의 업무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뉴먼은 2006년에 세상을 떠난 판사와 대화를 나눴다고 말하거나 자신이 도·감청을 당한다고 주장했다. 불과 며칠 전 그가 다룬 사건에 대해 나눈 대화를 기억하지 못했고, 다른 판사가 한 달 안에 끝내는 사건을 600일 이상 들여다볼 정도로 업무 속도도 느렸다.
뉴먼 판사는 특허·지식재산권 분야 전문성을 부각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주장하며 맞소송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법원의 정신 감정 절차를 거부해 업무를 중단하게 됐다. 그가 계속 협조하지 않는다면 정직 기한이 연장될 수도 있다고 재판부가 밝힌 상태다.
나이 든 미국 공직 사회...빛과 그늘
미국 연방법관은 죽거나 탄핵되거나 자진 사퇴하기 전에는 임기가 보장된다. 과거엔 가족을 통해 고령 판사들에게 은퇴를 권유하고 본인이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이별’이 보편적이었지만, 뉴먼 판사는 대화 시도 자체를 거부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미 연방법관의 평균 연령(69세)이 역사상 가장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2의 뉴먼’은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다.
의원들의 평균 연령이 65세인 미국 상원에서도 고령 의원들의 건강 문제가 불거졌다. 공화당 소속 7선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81)는 최근 두 차례나 공개석상에서 20초 넘게 말을 잃고 얼어붙은 상태가 돼 걱정을 샀다. 민주당 소속 6선인 다이앤 파인스타인(90) 상원 의원 역시 올해 들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석 달 가까이 의정 활동을 중단해 사퇴 요구를 받았다.
나이를 기준으로 공직에 제한을 두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평등권에 위배된다. 판사의 종신 임기 보장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라는 취지다. “노쇠한 파인스타인이 경력 짧은 상원의원보다 낫다”는 파인스타인 의원 보좌관의 반론은 정계에서의 연륜이 무시할 수 없는 가치임을 보여준다. 실제 공직자의 나이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미국에서 여러 차례 좌절되기도 했다.
그러나 공직자의 건강과 판단력은 국가의 미래·국민의 생명과 직결돼 있어 개인의 의지에 맡겨 두기엔 위험하다. 낸시 S. 제커 미 워싱턴대 교수는 학술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공직을 맡기에 ‘너무 나이 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공직자의 연령 제한은 민주적인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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