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이상 갈등 중인 성남 아파트 가보니]
손수레 배송, 저상형 차량… 기사들은 난색
출입 허용, 안전 기준 강화? 궁극 대안 아냐
19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 앞 공터에 푸른색 천막 3개가 세워져 있었다. 임시로 설치된 ‘택배물품 보관소’로 천막마다 택배 상자 100여 개가 가득했다. 언제 배송된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포장이 찢어지거나 빛바랜 상자도 보였다. 이곳을 드나드는 택배 기사들이나, 입주민 모두 표정엔 불만이 가득했다. 택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석을 열흘 앞두고 3개월 넘게 ‘택배대란’이 이어지고 있는 이 아파트를 찾아 주민과 택배기사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입주민, 택배기사 모두 고충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은 채 천막에 온 40대 입주민 A씨는 “언제까지 이 고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60대 여성 B씨도 “우리 동은 큰 도로를 건너야만 (천막까지) 올 수 있어 10분 넘게 걸릴 때도 있다”며 “상자가 많아 내 물건 찾는 것도 일이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아파트 입구에 내걸린 ‘저상차량으로 지하주차장을 통해 세대 문 앞으로 배송해달라’는 현수막이 공허해 보였다. 택배기사들 마음도 편치 않다. 기사 C씨는 “임시 천막에 상자를 쌓아두고 있는데, 고객들이 불편해하니 마음이 무겁다”고 속내를 전했다. 또 다른 기사 D씨도 “누구나 출입 가능해 분실 우려가 크고 실제 배송되지 않았다는 민원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택배대란 계속, 대책은 없어
성남시와 입주민 등에 따르면, 입주한 지 1년쯤 된 이 아파트에서 택배대란 문제가 터진 건 6월 1일부터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입주민 안전을 위해 주민 투표를 거쳐 소방차와 구급차를 제외한 모든 차량의 보행자도로(지상) 출입을 막으면서다. 지상에 주차장이 없는 ‘공원형 아파트’ 특성을 감안했다는 게 입주자회의 설명이다. 전체 6개 단지(5,200여 가구) 중 1, 4, 5단지가 지상출입 금지 조치에 동참했다.
입주민들은 지하 주차장을 통해 현관 앞으로 배송해달라고 택배 회사에 요구했다. 그러나 택배 업계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높이는 2.1m인데, 상당수 택배 차량 높이는 2.6m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파트 입구에 택배 차량을 대놓고 일일이 손수레로 배송하기도 힘들다. 기사들은 “길게는 200m까지 걸어 들어가야 한다”며 현관 앞 배송을 거부하고 있다.
입주민들은 일반 배송 차량보다 높이가 낮은 저상형 차량을 도입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우체국 등 일부 택배사는 저상 차량으로 개조해 지하로 배송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말처럼 쉽지 않다. 택배사 측은 “실을 수 있는 물품이 500~600개에서 절반 넘게 줄어 운영이 어렵다”고 난색을 표한다. 저상 차량의 경우 적재함 천장까지 높이가 일반 택배 차량보다 낮아 기사들이 늘 허리를 굽힌 채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와 무릎 통증 등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결국 배송이 몰리는 추석을 눈앞에 두고도 절충안을 찾지 못해 명절 대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자체도 국토부도 해법 못 찾아
사실 택배대란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2018년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의 한 아파트를 시작으로 서울 강동구, 세종시, 인천, 경기 하남 위례신도시 등의 공원형 아파트에서 충돌이 반복됐다. 최근엔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도 갈등이 불거졌다. 그러나 뾰족한 해법은 여전히 없다. 지자체 관계자는 “입주민과 택배사 이견이 커 중재가 어렵다”고 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방안을 강구 중이다”고 답할 뿐이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그나마 지금 상황에선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허용하되, 주민 안전을 위해 운행 규정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 역시 궁극적인 대안은 아니어서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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