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씽, 당신이 치매에 걸린다면...

"여기가 어디지?"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기억이 안나..."

"나 좀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우리 남편 보고 싶어"

미싱

Chapter 2
당신이 치매에 걸렸다면...
가상 치매 배회 체험

SCROLL

치매 환자 시야에서
바라본 세상

치매 환자들은 왜 자주 길을 잃을까요.
자주 넘어지는 건 또 왜일까요.

치매 환자 강선아(가명)씨의 외출 동선을 따라가보며, 선아씨의 시선을 통해 치매 환자들이 길을 잃고 배회하게 되는 이유를 간접체험해보고자 합니다.

1혼잡한 골목

“엄마야! 아이코! 놀래라, 부딪힐 뻔 했잖아!”

뭐가 이렇게 쌩하고 달려오는 게 많을까.
아, 자동차구나. 저기 지나가는 건 사람일까.
부딪힐까봐, 겁이 나서 도무지 발을 뗄 수가 없다.

빛과 함께 사라졌다 회복하는 현상

치매에 걸리면 시각 시스템도 취약해집니다. 이미지가 전혀 다르게 처리되거나, 공간-동작-명암 인지에 장애가 생깁니다.

처음에 '번쩍'하고 빛이 환하게 비치면서 주위 시야가 사라졌다 회복하는 현상(changes to the reaction of the pupil to light)은 빛을 받아들이는 동공이 빠르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치매 노인의 경우 더욱 기능이 떨어집니다. 특히 집 안에 있다 밖으로 나갈 때 잘 생기죠. 이로 인해 차 사고 등의 위험도 커집니다.

2언덕 오르막길

“길이 왜이렇게 보이지? 차도 흔들리는데?”

갑자기 세상이 뿌옇게 보이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답답해.
머릿 속이 너무 어지러워서 걷기가 힘들다.

배경은 흐려지고, 대상은 또렷해지는 현상

주위 배경이 시야에서 흐려지고, 반대로 주위 배경은 뚜렷한데 주시 대상은 사라지는 현상(changes to the visual field)입니다. 가령 몸 형체는 보이는데 얼굴이 뿌옇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시야에 들어온 정보의 불일치를 뇌가 빨리 교정해주지 못하면 어지럼증을 겪기도 하는데요. 낙상의 위험도 많이 발생합니다.

3언덕 내리막길

“예전에는 이렇게 무섭지 않았는데
앞으로 가다 굴러 떨어지면 어떡하지”

저 앞에는 낭떠러지도 있는데
무서워서 앞으로 갈 수가 없어.

거리감 손상에 따른 불안 현상

감각세포의 퇴행으로 시야에서 거리감이 손상됩니다. 손에 잡으려는데 거리 감각이 떨어져 물건에 손이 닿지 않거나, 거리가 가까운지 먼지 가늠을 못해 발을 헛디딥니다. 특히 경사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내려갈 때 이런 시야의 변화로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다 보니 길바닥의 평범한 하수구 구멍이 낭떠러지로 느껴져 위험에 움츠리기도 합니다.

4좁은 골목길

“뭐지? 길이 갑자기 사라졌잖아!”

분명 방금전까지 걷고 있던 길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이 길로 가야 우리 집이 나오는데 길이 막혀 버렸잖아. 어쩌지

길이 사라지는 '시야 왜곡, 협착'

치매 환자들은 마치 볼록렌즈나 오목렌즈로 세상을 바라볼 때처럼 시야가 왜곡, 협착되면서 실제와 다른 상황으로 혼동을 겪기도 하는데요, 이럴 때 심리적 불안이 커지고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지면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5횡단보도, 건널목

“날씨가 흐려진건가? 왜이렇게 어두운거야?”

아까는 분명 밝았는데 벌써 밤이 된건가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건너도 되겠지?

시야가 좁아지는 '터널 현상'

치매가 심해지면, 시야가 좁아져서 이른바 '관 모양 시야'가 되는데요. 가는 관이나 원통을 통해 보는 것처럼 시야의 협착이 일어나는 현상(tunnel vision)을 말합니다. 터널에 있을 때를 상상해보시면 됩니다. 이로 인해 치매 환자들은 주위 상황을 인지 하지 못한 채 앞으로만 나아가거나 도로에서 자칫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6신호등

“엇? 건너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신호등이 바뀐거 같은데, 색깔이 보이지 않네
빨간색이나 초록색이어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색깔이지?
너무 헷갈리는데, 어쩌지, 언제 건너야 하는 거야?

마치 흑백사진처럼... 색상 감소 현상

치매 환자의 뇌가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색조와 대조입니다. 다양한 색상을 감지하는 능력이 감소되는 현상(reduced ability to detect different colors)때문인데요. 이 현상이 심해지면, 세상이 마치 흑백사진처럼 보이는데요. 때문에 치매 환자에게 친화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음영 대조가 분명해야 합니다. 가령 어두운 색깔의 식탁에 밝은 색깔의 그릇을 사용해 확실하게 구분을 지어주는 것이죠.

이렇듯 치매 환자는 일반인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봅니다.

빛이 번쩍거리고 배경이 흐려지고 시야도 좁아지기에 길을 자주 잃어버리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엑설런스랩은 실제 치매 환자 13명의 배회감지기 GPS 데이터로 그들의 배회 패턴을 분석했습니다.

그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 봤습니다.

치매 배회
프로파일링

한국일보는 배회감지기(행복GPS) 이용자 13명의
지난 6개월간 GPS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길을 잃는지 알아보기 위해섭니다.
배회 패턴을 알 수 있다면 효과적인 실종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자녀 동거 치매 환자, 배회 확률 ↓

보호자 유무에 따른 치매환자 배회확률

있음
5.5% 보호자 있음(8명)
없음
69.2% 보호자 없음(5명)
25
50
75

자녀와 동거하는 치매 노인은 배회 확률이 낮습니다. 자녀들이 문에 시정장치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혼자 살거나 배우자와 함께 사는 치매 노인은 10일 중 7일을 배회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돌볼 사람이 없으니 배회 증상은 여과없이 노출됐습니다.

외출 많을수록 배회 확률 ↓

평소 외출을 많이 할수록 길 잃을 확률은 줄었습니다. 의사의 진단에 따라 일정한 시간, 일정 경로로 산책을 나가는 치매 노인도 있었습니다. 외출에 대한 욕구를 해소함으로써 배회 확률을 낮추는 것입니다.

외출량에 따른 배회확률

교차로 많을수록 배회 확률 ↑

생활환경에 따른 치매환자 배회확률

시골
18.5% 시골(3명)
도시
75.1% 도시(7명)
25
50
75

치매 노인이 마주하는 교차로가 많을수로 배회 빈도는 높았습니다. 도시 거주 노인이 시골 노인보다 배회할 확률이 높은 이유입니다.

육거리서 느려진 걸음, 시작된 배회

-이정희(89·가명)씨 사례

이정희씨는 3년 전부터 배회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본인 집에서 자신의 딸 집을 향해 가다가 자주 길을 잃었습니다. 복잡한 육거리가 문제였습니다.

  • 1
  • 2
  • 3

이씨는 6월 8일 오후 6시 자신의 집에서 딸 집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육거리 교차로 A지점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했습니다. 걸음 속도는 분당 26m에서 9m까지 떨어졌습니다. 길을 잃어 일정 지점을 반복해 걷고, 특정 장소에서 정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오후 8시 30분 딸 집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이씨는 6월 10일 오후 6시 24분 딸집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다 이틀 전 똑같은 장소에서 길을 잃고 배회했습니다. 그날 오후 7시 35분 딸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주변을 배회했습니다.

4월 3일 오후 10시 27분 이씨는 집에서 나와 딸 집으로 향했을 겁니다. 그러나 집 인근 오거리서 방향감각을 상실해 남서쪽으로 향했습니다. 이때도 C지점에서 걸음 속도는 느려졌습니다. 이씨는 밤새 인근을 배회한 끝에 집에서 약 600m 떨어진 지점에서 다음날 7시 32분에 발견됐습니다.

경작하던 밭, 새벽 순찰하는 아버지

-권순호(84·가명)씨 사례

3년 전쯤 치매 진단을 받은 권씨는 1년 전부터 배회 증상이 눈에 띌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과거 농사를 짓던 밭이나 마을 인근서 배회하는데, 평생의 생활 습관이 아직도 발현되는 듯 합니다. 다만 도시와 달리 동선이 복잡하지 않고 일정한 경향성을 띄었습니다.

권씨는 6월 15일 오전 7시 7분 집을 나와 배회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밭으로 가려고 하는 성향이 있지만, 이날은 밭으로 가는 갈림길인 A지점에서 길을 잃었는지 다른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마을을 한 바퀴를 돌고 집 인근에서 오전 10시 46분에 발견됐습니다. 전체 배회거리는 800m로, 3시간 18분을 배회해 속도는 분당 4m에 불과합니다. 일반인은 도보 10분이면 갈 거리입니다.

한국일보의 배회감지기 GPS 분석은 최초의 시도입니다. 그만큼 치매 환자의 배회 패턴 연구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의미입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번 분석을 계기로 치매 환자의 배회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지길 희망합니다. 분석에 도움을 준 최호진 신경과 교수의 말을 빌려 끝을 맺습니다.

"이번 데이터 분석은 배회 등 이상 행동을 데이터로 분석해 경향성을 일부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 결과에 만족하면 안 되고 더 많은 데이터를 모아 정밀한 결과를 도출해야 합니다."
취재
엑셀런스랩 강윤주, 이성원, 박지영 기자
영상
박고은 PD, 전세희 모션그래퍼
인터랙티브 기획 제작
박인혜 기획자, 한규민 디자이너, 이정재 개발자

도움
- 가상 치매 배회 체험 전문가 자문
장기중 아주편한병원 진료부원장(정신과 전문의)

- 치매 배회 프로파일링
류호경 한양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최호진 한양대 의과대 신경과 교수,
김현도 한양대 이매진엑스랩 연구원(러닝시그널 대표),
한국취약노인지원재단 김응철 부장,
한국취약노인지원재단 김현국 대리,
SK하이닉스,
SK텔레콤
사라진 엄마를 찾습니다 다시 쓰는 실종보고서

Copyright © The Hankook-Ilb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