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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와 금초, 그리고 사초

입력
2023.09.14 04:30
수정
2023.09.20 11:1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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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무덤가에 무리 지어 피는 구절초. 꽃향기가 망자의 넋이 되어 벌초하는 후손들의 마음을 다독여 준다.

무덤가에 무리 지어 피는 구절초. 꽃향기가 망자의 넋이 되어 벌초하는 후손들의 마음을 다독여 준다.


주말 벌초를 겸한 성묘를 다녀왔다. 한가위를 앞두고 하는 벌초는 우리네 중요한 의례다. 이맘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벌초 가는 이들을 보면 왠지 좋다. 조상의 소중함을 알고, 자녀들에게 뿌리를 알게 해 주는 이들은 (도로가 막힐지언정) 표정이 환하기 때문이다.

고향의 산속엔 살찐 가을볕이 내리쬐었다. 오랜만에 모인 형제자매가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껏 풀을 깎고 나니 해가 너울너울 서산으로 넘어간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올리려는 순간 “앵~” 단내를 맡은 벌들이 몰려들었다. 이때 가장 두려운 건 독성이 강한 말벌이다.

말벌의 ‘말’은 크다는 뜻을 더하는 접사다. 말벌 중에서도 덩치가 가장 큰 장수말벌은 어른 새끼손가락만 한 데다 힘이 세고 독성도 강해 특히 조심해야 한다. 매미 중에 가장 큰 것은 말매미, 개미 중에 가장 큰 건 왕개미라고도 불리는 말개미다.

벌초와 금초의 차이가 궁금하다. 벌초는 무덤의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아 깨끗하게 다듬는 일이다. 금초는 ‘금화벌초(禁火伐草)’의 준말로, 무덤에 불조심하고 때맞춰 풀을 베어 잔디를 잘 가꾼다는 뜻이다. 불을 내 묘지를 태우지 말고 낫, 예초기 등으로 정성껏 잘 다듬으라는 말이다. 한때 조상님 산소에 난 풀을 깎을 때 ‘칠 벌(伐)’자를 쓰는 것은 공손하지 않아 ‘벌초’는 하층민, 금초는 양반의 용어라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전혀 근거 없는 설이다.

사초(莎草)는 벌초, 금초와 달리 무덤에 잔디를 입히는 일이다. 묘의 봉분을 높이거나 무너진 부분을 보수할 때 필요하다. 조상의 산소는 아무 때나 손대는 것이 아니라, 손(損)이 없고 절기상으로도 좋은 한식날 주로 한다.

벌초를 중히 여긴 우리의 문화는 속담과 풍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추석 전에 소분 안 하면 조상이 덤불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 “식게(제사) 안 한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 안 한 것은 남이 안다” 등의 제주 속담은 벌초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또 “의붓아비 묘 벌초하듯”,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외삼촌 산소에 벌초하듯” 등의 속담은 무슨 일을 할 때 정성을 다하지 않고 대충 눈가림으로만 한다는 뜻이다. 경기도에는 “(음력) 8월에 벌초하는 사람은 자식으로 안 친다”는 말도 있다.

추원보본(追遠報本). 조상의 덕을 추모해 제사를 지내고,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다는 말이다. 장례 문화는 최근 다양해져 잔디장 수목장 같은 친환경 자연장이 늘고 있다. 어쩌면 벌초도 어느 순간 사라져 풍속으로만 남을지도 모르겠다. 사라지고 나면 그리워하는 일만 남는다.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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