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디올·샤넬…'아트 마케팅' 집중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명품에 입혀
5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코트. 고시원을 떠올리게 하는 복도 끝 밝은 빛이 새어 나오는 마지막 방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새까맣게 탄 사람의 형상과 붉은 핏자국이 보였다.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웹툰 '지옥'에 나오는 지옥사자의 '시연'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가 연 복합문화행사 '프라다모드'에서 연 감독이 선보인 설치작품이다. 프라다모드는 전시와 영화, 공연 등이 어우러진 행사로 마이애미, 홍콩, 런던 등에 이어 한국에서는 처음 열렸다. 이숙경 프라다모드 서울 큐레이터는 "한국 문화를 잘 보여주는 콘텐츠는 영화라고 판단해 미술과 영화를 접목한 전시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디올도, 샤넬도 국내 예술가와 손잡는다
명품업계가 국내 예술가들과 손잡고 전시 기획에 나섰다. 우아한 영역으로 여겨지는 아트에 브랜드 정체성을 녹여내면서 명품으로서 품격을 높이고 고객과 감성적 소통도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명품업계 아트 마케팅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의 개막 시기와 맞물리면서 특히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은 2~17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레이디 디올 셀레브레이션' 전시를 연다. 추상미술가 하종현, 실험미술 선구자 이건용 등 국내 현대미술 작가 24명이 재해석한 레이디 디올 가방을 볼 수 있다. 대표 제품을 미술 작품으로 표현해 가방에 깃든 역사와 장인 정신을 돋보이게 하겠다는 의도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샤넬도 8월 25일~9월 23일 서울 종로구에서 재단법인 예올과 한국 공예 전시인 '우보만리:순백을 향한 오랜 걸음'을 열었다. 화각장 한기덕과 도자공예가 김동준을 각각 올해의 장인과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하고 이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아트에 브랜드 철학 녹여…명품의 가치 높인다
명품 브랜드가 아트를 활용하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루이비통은 2000년대 초 일본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을 가방에 적용하면서 젊은 브랜드로 이미지 전환에 성공했다. 프라다는 2009년 서울 경희궁에서 건축가 램 쿨하스와 함께 움직이는 건축물 '프라다 트랜스포머'를 선보였다.
명품 브랜드가 아트를 추구하는 이유는 예술을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을 사려는 이들은 제품의 품질이 아니라 브랜드에 담긴 스토리와 가치를 소비한다는 설명이다. '트렌드코리아 2023' 공동저자인 이향은 트렌드 분석가는 "명품은 아무리 좋아도 결국 소비재지만 예술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고 유일무이한 것이라 그런 가치들을 브랜드 안에 담고 싶어하는 것"이라며 "아트를 통해 브랜드의 철학과 사상을 녹여내면서 명품의 가치를 더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명품업계가 최근 한국미술과 협업에 유독 적극적인 배경을 두고 아트슈머(문화적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등장과 연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몇 년 사이 큰손으로 거듭난 한국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해 국내에서도 아트 마케팅을 강화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특히 이번 아트페어에는 국내외 여러 유명 인사들이 참여할 예정이라 브랜드를 알리기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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