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빈곤 문제 해결" 촉구하던 모디 총리
슬럼 철거로 인도 취약계층 10만 명 터전 잃어
"외국 정상들에 가난 숨기려"...G20 의식 의혹
“가난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가난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5년 전 영국 웨스트민스터홀 연설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하층 계급 출신의 모디 총리는 세계 빈곤 문제에 대해 줄기차게 목소리를 내 ‘빈국의 대변인’으로 불렸다.
그런 모디 총리가 인도의 빈민들을 외면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인도 정부가 9일 개막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개최지인 뉴델리의 빈민가를 철거하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전했다. 외국 손님을 의식해 ‘빈곤 지우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 선진국 정상들이 대거 참석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참석한다.
빈민 부끄러웠나...G20 앞두고 갑작스레 ’청소’
인도 정부와 뉴델리 당국은 지난 5월부터 도시 전역의 빈민가를 철거해왔다. 정상회의가 열리는 바라트 만다팜 컨벤션 센터와 유적지인 투글라카바드 인근의 빈민가가 헐리며 10만 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인도 싱크탱크 CPR에 따르면, 뉴델리 시민 약 1,600만 명 중 건축 허가를 받은 건물·주택에 사는 건 오직 23.7%뿐이다. 나머지는 판잣집 등 임의로 지은 불법 구조물에 거주한다. 극심한 사회·경제적 양극화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불법 구조물이어서 철거했다고 해명했지만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임시 거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집부터 허물면서 취약계층 수만 명의 생존이 위태로워졌다. 정부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5년 만에 최악의 홍수가 뉴델리를 휩쓸었을 때도 거리의 시민들을 방치했다. 컨벤션 센터 인근 판자촌에 거주하던 한 시민은 “방수포로 지은 임시 텐트에서 썩어가는 쓰레기, 파리·모기떼에 둘러싸여 몇 주를 먹고 잤다”며 “가난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미지 메이킹?...빈민 쫓아 만든 ‘클린 인디아’
모디 총리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모임인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로서 선진국에 개도국의 빈곤 문제 해결을 촉구해 왔다. 그는 태생적 신분을 나누는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최하층 계급인 '수드라' 와 가까운 '바이샤' 계급 출신이다.
이 때문에 인도 빈민들을 외면한 이번 행보가 지탄받는다고 CNN은 지적했다. 모디 총리가 국제사회에서 ‘남반구의 리더’를 자처하며 영향력을 키워가는 상황에서 인도인들의 열악한 생활 수준을 감추려 했다는 것이다. 인도의 주거 활동가 하쉬 맨더는 “인도는 외부로 드러나는 빈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며 “모디 총리도 손님들에게 가난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다. 영국 식민 국가들인 영연방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커먼웰스 게임’이 뉴델리에서 개최된 2010년 당시 집권당도 빈민가를 철거하고 노숙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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