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러시아 제재로 서방은행 철수한 틈 노려
브릭스 회원국 증가로 위안화 영향력 확대
"기축통화로서 달러 대체는 불가능" 평가도
중국이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자금난에 빠진 러시아에 위안화 대출을 4배나 늘렸다. 대러시아 금융제재로 서구 은행들이 현지에서 철수하자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미국 달러화의 지배력을 허물고 위안화의 위상을 높이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우크라이나 키이우경제대학교의 공동 분석 결과에 따르면, 중국은행과 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농업은행 등 중국의 4대 국유은행은 올해 3월까지 최근 14개월간 러시아 은행들에 대한 대출 규모를 종전 22억 달러(약 2조9,040억원)에서 97억 달러(약 12조8,040억원)로 늘렸다. 4배를 훨씬 웃도는 규모다.
러시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지난해 양국 간 교역 규모는 1,850억 달러(약 244조150억 원)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고, 러시아 무역대금 가운데 위안화 결제 비율도 16%로 치솟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위안화 결제 비율은 1%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달러화와 유로화 결제 비중은 60% 이상에서 50%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 같은 현상 변화는 서방 은행의 러시아 철수 탓이 컸다. 미국 시티은행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시작되자 일찌감치 현지 사업을 접었다. 오스트리아 라이파이젠, 이탈리아 유리크레딧 등도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안드리 오노프린코 키이우경제대 교수는 “중국 은행들이 러시아 은행에 대한 대출을 늘리는 것은 달러화나 유로화 대출을 위안화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했다.
브릭스 회원국 증가로 ‘위안화 부상’ 탄력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위안화의 영향력 확대는 중국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10년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거대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 사업으로 ‘위안화 굴기’ 시동을 걸었고, 오랜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화해시키는 등 중동에서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위안화 영향력 확대에 공을 들였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에 위안화를 대출해 주고 양국 간 무역 대금 결제용으로 위안화를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중동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브라질, 인도 등도 위안화 무역 결제를 시작했다.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신흥 경제국 협의체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회원국을 기존 5개국에서 11개국으로 늘리기로 함에 따라, 위안화 위상 확대도 탄력을 받게 됐다. 내년 정상회의까지 1년간 ‘브릭스 내 공동 통화’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기존 5개국만 해도 전 세계 인구의 42%, 국내총생산(GDP)은 23%, 교역량은 18%를 각각 차지하는데, 내년 1월부터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등 6개국이 합류하면 역내에서 통용되는 화폐양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위안화가 국제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지위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진리췬 총재마저 올 5월 “위안화의 달러 대체는 달러의 완전한 퇴출을 의미하는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지난 6월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이 공개한 위안화의 국제 결제 비중도 2.54%로, △달러화(42.6%) △유로화(31.7%) △영국 파운드화(6.47%) △일본 엔화(3.11%)에 이어 5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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