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부 때와 입장이 180도 바뀌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떤 정책이 정권 교체와 함께 확 뒤집히면 담당 고위 공무원은 좌천될 각오까지 해야 하는데,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면 누가 앞장서서 정책을 제안하고 추진하겠습니까?"
정부 중앙부처 공무원의 하소연이다. 그는 공직사회에 '복지부동'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렇게 지적했다. 정권마다 강조하는 '적폐청산'과 '전 정부 지우기' 탓에 공무원이 업무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국무회의에서 "고성과자에겐 관행을 뛰어넘는 파격적 승진과 연봉 인상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통령실이나 총리실이 공직기강 점검에 나서야 마지못해 움직이는 척이라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위에서 지시하지 않은 일에 굳이 나섰다가는 언제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에 감사원은 적극적인 행정조치를 장려하기 위해 '사전 컨설팅'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공익을 위한 일인데도 법과 규정 해석이 모호해 공무원들이 움츠러드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다. 사전에 의견을 구한 뒤 감사원이 조언한 대로 업무를 처리했다면 책임을 묻지 않는 제도다. 기존 면책조치나 모범사례 포상은 사후 제도여서 행정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2019년 1월 도입했다.
가령 감사원은 △종교시설 존치에 따른 도로 노선 변경으로 사업비가 증가하는 경우 '예외적인 사유'에 해당하는지 △도시철도역사 내 약국 개설이 '건축법 시행령'에 위배되는지 △대학 내 국유지에 대학교 소유 건축물을 증축할 수 있는지 △해제한 학교용지를 재확보한 경우 교육환경영향평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사전 컨설팅을 최근 실시했다. 특히 '도로 노선 변경 건'에 대해 감사원은 4일 "사업비가 증가하더라도 노선을 변경해 미개통 구간 공사를 완공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물꼬를 텄다. 예전 같으면 '비용 증가'에 꼬투리가 잡혀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간 사전 컨설팅 접수 건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2019년 101건에서 지난해 50건으로 반토막이 났다. 올해는 7월까지 37건이 접수됐다. 여전히 공직사회가 적극행정을 꺼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올해부터 '찾아가는 사전 컨설팅'을 연 1회에서 3회로 늘려 제도 확산에 주력할 방침이다.
아울러 공무원 사회에 적극행정 분위기가 확산되도록 감사원도 쇄신 노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감사원은 공격적인 감사로 인해 전임 정부와의 마찰을 자초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과거 세세한 잘못까지 들춰내 지적하던 감사 관행에서 벗어나, 피해자가 없고 국익과 공익에 도움이 된다면 사소한 규정 위반은 용서하는 방향으로 감사행태를 바꿔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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