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기준 완화 시행 첫날]
명절 선물 상한 20만 원→30만 원 상향
유통가, 상한액에 맞춘 선물세트 선보여
장기 경기침체 탓 효과 의구심 보이기도
“10만 원이라도 오른 게 어딥니까. 안 그래도 손님이 없어 힘들었는데, 올해 추석은 기대해 보려고요.”
30일 오전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만난 정육점 직원 권혁균(44)씨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령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크게 반겼다. 이날부터 개정안이 시행돼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자와 주고받을 수 있는 농축수산물ㆍ농축수산가공품 명절 선물 가액이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평소 가액은 10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올랐다. 권씨는 “그간 상한에 맞춰 9만9,000원, 19만5,000원짜리 한우 선물세트 판매에 주력했는데 이제 20만 원대 세트도 더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오랜 고물가와 경기침체에 시름하던 시장 상인들과 유통가가 호재를 만났다. 청탁금지법 기준이 완화되면서 추석(9월 29일)을 앞두고 명절 특수를 단단히 벼르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상인들은 매출 부진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실제 이날 오전 둘러본 국내 최대 규모인 마장동 축산시장과 송파구 가락시장에도 오가는 손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마장동에서 한우 정육점을 운영하는 손경석(29)씨는 “감염병 사태가 끝났어도 경기가 워낙 안 좋은 탓인지 외국인 관광객만 늘고 내국인 손님은 오히려 줄었다”고 푸념했다.
이들은 개정된 청탁금지법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추석을 전후한 내달 5일부터 10월 4일까지 공직자 등에게 최고 30만 원 상당의 선물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미 높아진 가격 상한에 맞춘 상품도 속속 등장했다.
박스당 최고 5만 원 수준의 제철과일만 즐비했던 가락시장에는 10만 원대, 20만 원대 과일 바구니가 여럿 눈에 띄었다. 상인들은 애플망고 등 수입 과일을 섞은 선물 세트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농수산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유남(53)씨는 추석 선물용 과일 바구니를 포장하며 “상한액이 올라 다들 넉넉하게 사지 않을까 싶다”며 “특히 수산물 쪽이 일본 오염수 문제로 어수선해 과일을 찾는 수요가 늘 것 같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백화점에도 고가의 추석선물 코너가 등장했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는 영광 굴비 24만 원, 전복 세트 23만 원 등 20만 원대 상품이 다양하게 진열돼 있었다. 식품관을 찾은 소비자 박수정(62)씨는 “올해는 고마운 공무원 지인 분들께 30만 원 가격에 맞춰 선물할 계획”이라고 했다. 송모씨도 “지금까지는 주변 선생님들한테 15만 원 선에서 견과류나 와인을 드렸는데, 이제 가격 여유가 생겨 좀 더 비싼 선물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불황의 골이 워낙 깊어 법이 바뀌어도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이란 비관론도 적지 않았다. 가락시장 상인 손인수(73)씨는 “보통 사과, 배 정도만 팔리는데 30만 원짜리 상품을 내놓는다고 손님들이 선뜻 지갑을 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50년간 2대째 마장동에서 한우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정대씨도 “일단 주문 추세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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