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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입력
2023.08.29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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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집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다툼과 더불어 아파트 공동체의 부조리한 일들을 그려내며 한국 사회 현실을 돌아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집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다툼과 더불어 아파트 공동체의 부조리한 일들을 그려내며 한국 사회 현실을 돌아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28일까지 관객 330만 명을 모은 한국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가 주인공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대지진으로 서울 모든 건물이 다 무너진 가운데 홀로 우뚝 선 황궁아파트가 주요 배경이다. 지진 전에는 딱히 눈에 띄지 않던 황궁아파트에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벌어지는 아귀다툼이 이야기 줄기를 이룬다. 하루 만에 신분 상승한 황궁아파트 거주자들 모습은 한국 사회 부동산 벼락부자를 은유한다.

□ 한국에서는 집에 관한 영화가 곧잘 사랑받아 왔다. 코믹 공포 영화 ‘귀신이 산다’(2004)는 귀신과 인간이 한 집에 살면서 벌어지는 사연을 그려 관객 289만 명을 모았다. 셋방살이에 한이 맺힌 한 사내가 생애 최초로 집을 샀다가 겪는 일이 대중의 공감을 얻을 만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219만 명이 관람한 ‘싱크홀’(2021)도 비슷한 소재를 다뤘다. 주인공이 어렵게 산 빌라가 통째로 지반이 내려앉아 생긴 거대 구멍 속으로 떨어지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 한국에서 집은 재산 목록 1호이자 신분의 상징이다. ‘귀신이 산다’와 ‘싱크홀’은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해 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집을 둘러싼 한국인의 욕망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육교 하나 건너는 데 23년”이 걸렸으니 외부인들과 아파트를 절대 공유할 수 없다는 한 등장인물의 말에는 한국 사회가 함축돼 있다. 밖에서 누군가 죽어나가도 거주민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집단이기주의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이다.

□ 한국 영화 속 인물들의 집에 대한 사유는 미국 영화 ‘노매드랜드’(2020)와 비교할 만하다.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은 살던 작은 도시가 불황으로 무너지자 길 위의 삶을 택한다. 작은 밴을 타고 떠돌던 그에게 한 소녀가 “엄마 말로는 집이 없으시다(Homeless)던 데 진짜예요?”라고 묻는다. 펀은 “집이 없는 것(Homeless)은 아냐. 거주지가 없는 것(Houseless)이지”라고 답한다. 정서적인 집(Home)에 대한 애착보다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House)에 대한 집착이 강한 한국인은 공감 못 할 대사일지 모른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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