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중·러·프 '원전 건설' 검토"
"미국 핵 지원 얻기 위한 압박용"
중국도 중동 영향력 확대 나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탈(脫)미국 행보가 심상치 않다. 최근 전통적 우방이자 군사동맹인 미국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부쩍 보이는 가운데, 급기야 중국 또는 러시아산(産) 원자력발전소 건설까지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사우디가 내년부터 신흥 경제 5개국 협의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합류하기로 한 데 이어, 또다시 중국·러시아에 바짝 밀착하는 듯한 소식이 전해진 셈이다.
미국은 사우디가 외교의 무게 추를 중국 등으로 옮길수록 애가 타는 모습이다. 미국의 핵억제에 반발하는 사우디로선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우디, 중·러 원전 저울질"
2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가 중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입찰 제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사우디 당국자들을 인용해 중국 국영 원전기업 중국핵공업그룹(CNNC)이 사우디 동부 지역 원전 건설에 입찰했다고 전했다. FT는 "CNNC는 입찰 과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과거에도 사우디와 원자력 산업 발전을 위한 협력 관계를 발표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사우디의 핵무장 가능성을 예의주시해 왔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중동의 대표적 숙적인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국교 수립 중재에 나선 가운데, 사우디가 관계 정상화 대가로 미국에 민간 분야 원자력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 허용'을 요구해 다시 이 사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은 이번에도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이유로 사우디 요구를 일축했다. '우라늄 농축 허용'은 곧 핵무기 생산 능력을 갖춘다는 의미인 탓이다.
재선 앞둔 바이든 '압박 용도'
문제는 미국이 사우디를 단념시킬 '패'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중동 지역 영향력 회복을 노리는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이스라엘 수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성공할 경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최대 외교 치적이 될 수 있다. 사우디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원전 건설을 맡기는 방식으로 미국 압박에 나선 이유다. FT는 "사우디는 오랜 기간 자국의 민간 핵 능력을 추구해 왔고,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논의에서도 (핵 능력 증진과 관련한) 미국의 지원을 핵심 요구 사항으로 삼았다"며 "중국과 러시아 등의 원전 건설 입찰 제안을 고려하는 건 미국을 흔들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인권 문제 등으로 가뜩이나 사우디와 관계가 삐걱대는 미국은 더 난처해졌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일찌감치 미국에 편향된 외교 노선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선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끌어들여 대미 관계에서 자국 입김을 강화하려는 전략도 노골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중국의 '중동 꿰차기'도 속도
중국도 이를 틈타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올해 3월 베이징에서 '앙숙' 사우디와 이란 사이를 중재해 외교 정상화 합의를 이끌어내더니, 지난 24일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주도로 두 나라를 브릭스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석유 강국 사우디는 미국의 궤도에서 벗어나 스스로 세계의 강자가 되려는 야망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전문가를 인용해 "사우디는 브릭스 합류 등으로 자신들이 미국 말고도 다른 옵션이 있고, 이를 활용한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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