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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온·상압 초전도체를 향한 인류의 끝없는 도전

입력
2023.08.22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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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초전도체를 향한 인간의 꿈은 계속돼야 한다
아인슈타인 전후, 물리학 거물들 초전도에 도전
1911년 카멜린 온네스, 처음으로 초전도체 발견
이후 실용화 위해 임계온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
'LK-99' 상온 초전도체라는 미지답의 영역 '점프'
세계 과학계, 초전도체 아니라는 발표 잇따라
인류의 도전은 지속... "국가 연구소 신설해야"

편집자주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 역시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정립됐습니다. 어려운 경제학을 익숙한 세계사 속 인물, 사건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으로 근무하는 조원경 교수가 들려주는 ‘세계사로 읽는 경제’는 3주에 한 번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꿈의 물질'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한국 연구진이 개발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둘러싸고 해외 과학계에 파장이 일었다. 사진은 미국 에너지부의 극저온 초전도체 물질. 연합뉴스

'꿈의 물질'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한국 연구진이 개발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둘러싸고 해외 과학계에 파장이 일었다. 사진은 미국 에너지부의 극저온 초전도체 물질. 연합뉴스


상온ㆍ상압 초전도체 발견과 관련한 논란이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 한국이 쏘아 올린 ‘LK-99’에 전 세계가 들썩였으나 과학저널 네이처가 8월 16일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꿈의 물질’인 상온 초전도체의 실마리를 한국 연구진이 찾았다는 주장은 현실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하지만 초전도체를 향한 인류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초전도체는 무엇일까?

물질은 전기적 성질에 따라 크게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로 나뉜다. 전기 전도도가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 정도 되는 물질이 반도체다. 임계온도 이하의 극저온에서 금속, 합금, 반도체 또는 유기 화합물 같은 전기 저항이 갑자기 없어져(저항 0) 전류가 장애 없이 흐르는 현상을 초전도 현상이라 한다. 외부 자기장과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형성하는 반자성도 띤다. 이런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물질이 초전도체다. 보통의 금속도 초전도 현상을 가질 수 있지만, 온도와 기압이라는 특정 조건을 갖춰야 해 지금까지 상온ㆍ상압 초전도체는 미지답의 영역이었다.

초전도체의 특성은 전기 저항이 0이라는 게 핵심이다. 전력 손실이 없다는 뜻으로, 임계온도에서도 열이 발생하지 않는다. 지금은 송전선으로 전력이 이동할 때 통상 저항에 따라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 미국은 송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이 한 해 22조 원에 달한다. 우리도 매년 1조5,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데 초전도체가 발명된다면 손실은 0이 된다.

반자성이란 자기장을 미는 힘으로 자석의 N극과 N극, S극과 S극의 원리를 생각하면 된다. 내부에는 자기장이 들어갈 수 없고, 내부에 있던 자기장도 밖으로 밀어내는 성질(마이스너 효과)이 있어 자석 위에 떠오르는 자기부상 현상을 나타낸다. 예컨대 강력한 초전도 자석을 활용하는 자기부상열차를 생각해 보자. 열차 바닥에 자석을 설치하고 선로에 도체를 설치한다. 열차 바닥 자석의 자기력과 선로에 유도된 자기장이 크면 열차를 띄울 수 있다.

물질의 최소단위는 원자이고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온도가 낮아지면 진동하는 원자핵과 전자와의 충돌이 감소하게 되고 금속 물질의 저항은 감소한다. 초전도체는 다른 물질과 접합했을 때 ‘조셉슨 효과’라 불리는 특이한 전기적 성질을 보인다. 이 성질은 극도로 민감한 자기장 센서를 만들거나 양자 컴퓨터의 큐빗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에서는 초전도체를 매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삶에서 초전도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병원이다. 병원에 있는 자기공명영상(MRI)에는 초전도체로 만들어진 전자석이 활용된다.


최근 한국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 국내외 과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초전도체는 전류가 특정 온도 이하에서 저항 없이 흐를 수 있게 하는 물질로 자기부상열차, 초고속 컴퓨터, 에너지 손실 없는 전력선 개발 등에 쓰인다. 핵융합, 양자컴퓨터, 자기공명영상(MRI), 가속기 등에도 활용된다. 뉴스1

최근 한국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 국내외 과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초전도체는 전류가 특정 온도 이하에서 저항 없이 흐를 수 있게 하는 물질로 자기부상열차, 초고속 컴퓨터, 에너지 손실 없는 전력선 개발 등에 쓰인다. 핵융합, 양자컴퓨터, 자기공명영상(MRI), 가속기 등에도 활용된다. 뉴스1


상온 초전도체를 향한 도전들

아인슈타인 전후 많은 물리학계의 거물들이 초전도체에 도전했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 양자 홀 효과의 이론적 기반인 란다우 준위를 발견한 레프 란다우,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전설적인 물리학자들이 이 문제에 도전했지만, 초전도의 원리는 밝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911년 네덜란드 레이던대의 물리학교수 카멜린 온네스가 처음으로 초전도체를 발견했다. 온네스는 순도가 높은 수은 선재를 통해 전류를 흘리고 온도를 내리면서 연속적으로 저항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절대온도 4.2K(영하 268.8도)에 도달하자 수은의 전기저항이 갑자기 없어졌다. 그는 이를 초전도현상이라 명명했고 191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임계온도가 너무 낮으면 초전도체를 실용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후의 연구는 임계온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대체로 물질의 온도가 영하 240도 이하로 매우 낮아야 초전도 현상이 발생하는데, 경제성 확보가 상당히 어렵다.

초전도체가 가지는 ‘마이스너효과’를 발명한 이는 1933년 독일의 물리학자 마이스너와 옥센펠트다. 마이스너효과는 자기장이 상대적으로 아주 작을 때에만 나타난다. 만일 자기장이 너무 크면 그것은 재료 내부로 침입하고 그 재료는 초전도성을 잃어버린다. 1957년 미국 일리노이대의 존 바르딘, 레온 쿠퍼, 로버트 슈리퍼 등 세 명의 과학자가 ‘쿠퍼 쌍(두 개의 전자의 쌍)’이라는 개념을 동원해 초전도 현상의 원리를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원리(BCS 이론)를 제시하고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다만 이 이론은 고온 초전도체(30K 이상, 영하 243도)에서 초전도성이 나타나는 물질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새로운 이론을 찾아내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이어졌다. 1986년 스위스의 IBM연구소의 베드노르츠와 뮐러는 린타넘-바륨-구리-산소(La-Ba-Cu-O) 화합물이 초전도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발견, 고온초전도 시대의 서막을 올리며 198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30K를 겨우 넘는 전이 온도를 가진 물질이었으나, 새로운 초전도 물질 군이었고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라 불렸다. 1987년 1월 미국 앨라배마대 연구진은 액체질소온도보다 높은 92K의 임계온도를 가진 ‘Y1Ba2Cu3O7’ 초전도체 합성물을 발표했다. 1988년 마에다에 의해 발견된 비스무스(Bi) 화합물이 110K, 쉥과 허만에 의해 합성된 탈륨(Tl) 화합물이 125K의 임계온도를 각각 나타냈다. 1993년에는 스위스의 쉴링이 임계온도가 133K인 수은화합물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불과 몇 년 만에 엄청난 발견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새로운 초전도체에 대한 과학적 흥미와 초전도체를 이용한 여러 가지 실용화 기술 개발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인해 관련 연구가 본격 시작됐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공개한 상온 초전도체 관련 논문. 아카이브 캡처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공개한 상온 초전도체 관련 논문. 아카이브 캡처


‘LK-99’가 불러온 기대감

초전도체의 성질을 띠는 임계온도가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온도보다는 터무니없이 낮아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계속됐다. 2020년 미 로체스터대의 랑가 디아스 교수는 섭씨 15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만들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상온 초전도체에 대한 기대와 연구가 높아졌지만, 데이터 조작 의혹 논란이 일었다. 의혹 제기에 그는 섭씨 21도와 대기압 1만 배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22일 세상을 뒤흔들 만한 논문 한 편이 등장한다. 고려대 교수들이 주축이 된 퀀텀에너지연구소에서 세계 최초로 ‘LK-99’라는 이름의 상온 초전도체를 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상온과 상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성공적으로 제작했다는 연구결과가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실렸다. 상온 초전도체는 온도가 127도(물성이 변하지 않는 온도) 이하일 때는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기에 우리의 일상에서 초전도 현상이 가능한 일이라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연구 방식을 보면 산화납과 황산납을 혼합해 725℃에서 하루 동안 구워 라나카이트를 제조한다. 라나카이트에 다시 구리와 인 분말을 섞은 뒤 48시간 동안 구워 인화구리를 만들게 된다. 이후 라나카이트와 인화구리를 분말 형태로 만든 뒤 진공 상태에서 다시 925℃에서 구워내면 상온 초전도체인 ‘LK-99’가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논문의 주장이 혁신적이기는 하나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정식 논문 절차를 밟은 것도 아니었기에 LK-99의 초전도 특성엔 의문이 제기됐고, 세계 곳곳에서 검증이 뒤따랐다.

초전도체, 상용화까지는 멀고 먼 길

만약 상온에서 초전도체를 구현할 수 있다면 냉각과정은 필요 없게 된다. 제작 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초전도체는 현재 핵융합에도 사용되고 있다. 핵융합과 태양광 발전 같은 차세대 기술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상용화까지 해결할 문제가 산재해 있다. 상온 초전도체가 발견된다면 핵융합에도 경제성이 좋아져 더 큰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KTX, SRT에 상온 초전도체가 접목된다고 생각해 보라. MRI 검진비용도 싸질 수 있다. 초전도체는 전선뿐만 아니라 양자컴퓨터,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높이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우리 일상의 가전제품을 소형화, 초경량화로 만들어 가히 혁명적 일이 발생한다. 물론 LK-99를 비롯한 새로운 초전도체가 발견된다고 해도 상용화까지 최소 10년 이상의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 기술이 돈과 직결되기는 어려워 주식시장에서 테마주에 엮여 무분별하게 투자하는 양상은 늘 그렇듯 지양돼야 하는 이유다. 다만 LK-99를 계기로 상온 초전도체를 본격 연구하는 ‘국가 초전도체연구소’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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