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8억 원 규모 설계·감리 계약 해지
LH 전관 이직 DB 구축해 지속 갱신
원희룡 "이권 카르텔, 공정 시장 왜곡"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에 휩싸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관 업체와 이미 체결한 설계·감리 용역 계약 11건, 648억 원 규모를 해지하는 한편, 앞으로 전관이 취업한 업체와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LH는 20일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주재로 ‘LH 용역 전관 카르텔 관련 긴급회의’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LH가 지난달 31일 이후 진행한 설계·감리 용역 계약 현황을 임원확인서와 전화 통화를 통해 조사한 결과, 전관 업체가 참여한 설계 공모 10건(561억 원 규모)과 감리 용역 1건(87억 원)이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LH는 이들 업체와 맺은 계약을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 다만 이후에 전관이 재직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확인되는 업체와는 계약 절차를 정상적으로 이행할 예정이다.
아직 낙찰자가 결정되지 않고 심사만 진행 중인 용역(설계 11건, 감리 12건)에 대해서는 ‘발주 부서의 불가피한 사유’로 판단해 해당 공고를 취소하기로 했다. LH는 앞으로 설계·감리 용역 업체를 선정하면서 'LH 퇴직자 명단' 제출을 의무화하는 한편, 전관이 없는 업체에 대해서는 심사 시 가점을 부여하도록 내규를 개정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이한준 LH 사장은 “(계약 취소는)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전관 고리는 이번 기회에 단절하겠다는 LH의 입장으로 여겨 주시길 바란다”면서 “이로 인해서 사업이 지연될 우려도 있지만 내규를 신속히 개정해 전체 물량 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날 회의에서 10월에 발표될 예정인 ‘LH 전관 카르텔 철폐 방향’을 일부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LH는 앞으로 전수조사를 통해 퇴직자 및 전관업체 자료망(DB)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최근 5년 내 LH와 설계·감리 용역을 맺은 업체에 대한 전수조사가 우선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이는 현재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취업심사대상자가 2급 이상 직원(부장 이상)으로 제한돼 그 수가 LH 전체 직원의 5.4%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국토부는 또 취업심사제도 자체도 강화하기로 했다. 퇴직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기업이 자본금 10억 원, 매출액 100억 원 이상인 영리 사기업체로 한정돼 있다는 지적을 감안해 앞으로 취업제한 대상기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 밖에 전관 업체의 경우, LH와 계약 자체를 차단하는 방안까지 검토한다.
다만 국토부가 공개한 취업심사제도 개편과 전관 업체 계약 제한은 각각 인사혁신처, 기획재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국토부와 LH는 당장 내규 등을 바꿔서 시행할 수 있는 방안(DB 구축)부터 추진하는 한편, 향후 관련 부처 또는 국회 등과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원 장관은 “전관을 고리로 한 이권 카르텔은 공공의 역할에 대한 배신일 뿐만 아니라 민간의 자유경쟁 시장을 왜곡시키고 공정한 경제 질서를 정면으로 파괴하는 행위”라면서 “건설 분야 이권 카르텔에 정면으로 대면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관 카르텔을 끊는 것만으로 부실공사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전관이 수주 영업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지식을 발휘하는 분야도 있기 때문이다. 전관이 건설업계 전반에 퍼져있는 상황에서 전관 업체를 몰아낸다면 실제로 사업 진행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도 있다.
전문가들은 결국 ‘싸게 빨리’ 짓는 건축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데 입을 모았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최창식 대한건축학회장은 “전관 카르텔 문제는 분명히 짚고 나가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지만 부분적으로는 정치적 접근으로 비친다”라고 지적했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안전에는 적절한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관을 백날 쳐봐야 소용이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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