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책임능력 없어 혐의 적용 불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 취소 결정
다른 사람의 자동차에 올라가 보닛을 발로 밟아 파손한 중증 자폐성 장애인에게 재물손괴죄 혐의를 적용해 유죄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는 "고의와 책임 능력이 없어 범죄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헌재는 1급 자폐성 장애인 A(27)씨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침해를 당했다"며 서울남부지검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A씨의 청구를 지난달 20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A씨는 2020년 7월 3일 한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된 다른 사람 소유의 아반떼 차량 위에 올라가 뛰어 보닛을 찌그러트린 혐의(재물손괴)로 같은 해 8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인정되나 여러 사정을 참작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인데, 혐의에 대한 유죄 판단을 전제로 한다.
A씨 측은 주차된 차량 보닛 위에 올라가 한쪽 발을 구르는 행동을 했을 뿐 뛰진 않았고, 이 행위로 차량이 망가진 것인지 명확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A씨가 지적수준 3세 미만인 자폐성 장애 탓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라, 행동에 고의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항변했다.
당시 블랙박스를 확인한 경찰은 탐문수사를 통해 A씨를 용의자로 특정, 같은해 8월 17일 그의 어머니가 입회한 가운데 13분 만에 피의자 조사를 마쳤다. A씨의 어머니가 "이런 행동을 한 건 처음이고, 그 이유도 전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진술을 대신했다. 헌재는 A씨 행동으로 보닛이 망가진 사실은 인정되나, 이 행동에서 A씨에게 고의와 책임능력(자기 행위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분별하고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봤다.
헌재는 "재물손괴죄가 인정되려면 타인 소유 차량의 효용을 침해하겠다는 인식을 미필적으로나마 갖고, 사물 변별 및 의사결정 능력도 갖추고 있었어야 한다"며 "이 사건 수사기록 증거만으론 A씨의 재물손괴 고의와 책임능력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헌재는 "검사가 A씨의 자폐성 장애의 내용과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 수사도 없이 혐의를 인정하고 기소유예 처분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형사사건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는 "심신장애인의 형사책임 문제는 최소한 정신감정 등을 거쳐 판단했어야 한다"며 "헌재가 그런 적절한 절차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다만 이런 경우 형사적 책임은 면제될 지라도, 손해를 배상해야 할 민사적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변호사는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이 혼동되는 경향이 있다"며 "다른 이에게 손해를 가한 사람이 심신상실 등으로 책임이 없으면, 감독 의무가 있는 보호자 등이 배상책임을 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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