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전몰자 추도식서 '반성' 언급 없이
지난해처럼 "전쟁 반복 안 할 것" 발언만
나루히토 일왕 "과거 돌아보고 깊은 반성"
제2차 세계대전 패전 78년을 맞은 올해 역시 일본 정상의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의 뜻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2013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추도식사에서 해당 구절을 빼 버린 이후 11년째다.
심지어 일본 여당인 자민당 고위 간부와 각료, 국회의원 60여 명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찾아가 참배했다. 또다시 ‘반성 없는 종전기념일’을 보낸 일본 정치권의 풍경이다.
이날 도쿄 지요다구 소재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전몰자 추도식에는 나루히토 일왕 부부와 기시다 총리, 전몰자 유족 등 약 2,10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193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약 310만 명의 명복을 빌었다.
일왕 "깊은 반성"... 총리는 11년째 언급 안 해
나루히토 일왕은 추도사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화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 이 결연한 다짐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 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일왕과는 달리, ‘반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은 것이다.
일본 역대 총리는 1995년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 발표 이후 18년간 종전기념일 전몰자 추도식 때마다 과거사 반성을 언급해 왔다. 그해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는 과거 일본의 아시아 국가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했다. 그러나 2013년 추도식부터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고, 이후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기시다 총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익 정치인들, 야스쿠니신사 직접 참배 행렬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신사에는 이날도 일본 우파 정치인의 참배 행렬이 이어졌다. 자민당 내 우익 성향 정치인인 하기우다 고이치 정조회장과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장관은 직접 야스쿠니신사를 찾아 참배했다. 2021년 10월 기시다 내각 출범 후 자민당 최고위급 임원을 뜻하는 ‘당 4역’에 속한 간부의 패전일 당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직 각료의 참배는 2020년 이후 4년째 이어졌다.
2001~2006년 총리를 지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자민당 총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장관,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에 속한 의원 67명도 직접 참배했다. 다만 기시다 총리는 참배를 하지 않고 ‘다마구시’라 불리는 공물을 봉납했다.
한국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와 공물 봉납에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정부는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야스쿠니신사는 1867년 메이지유신을 전후해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에서 숨진 이들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도조 히데키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6,000여 명이 합사돼 있다. 이 중 약 90%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과 관련돼 있다. 한반도 출신자도 2만여 명 합사돼 있으나, 신사 측은 유족의 합사 취소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