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영화 제작자 이봉우 대표
"감독과 작가 유명하지 않아도 봐
연극 '기생충'은 40회 공연 매진"
“이제 일본에서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붐이라 표현하는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한국 문화가 일본 문화의 한 부분이 됐으니까요.”
재일동포 영화 제작자인 이봉우(63) 스모모 대표는 20년 넘게 한국과 일본 영화 사이 가교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2000년 전후 영화 ‘쉬리’(1999)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 ‘살인의 추억’(2004) 등을 일본에 수입해 한국 영화 붐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영화 ‘기생충’을 동명 연극으로 만들어 일본에서 화제를 모았다. 제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찾은 이 대표를 지난 12일 오후 충북 제천시 충북도 북부 출장소에서 만났다.
이 대표가 한국 영화를 수입했던 시절 이후 20여 년이 흘렀다. 그사이 한국 영화도, 한국 영화에 대한 일본 관객의 인식도 크게 변했다. 이 대표는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를 모르는 일본인들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젊은이들은 6ㆍ25전쟁과 남북 분단 상황을 아예 몰라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큰 충격을 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쉬리’ 등이 일본에서 흥행하며 “한국 배우와 감독 이름을 보고 한국 영화를 찾아 보는 경향이 생겼다”고도 말했다.
이 대표는 “최근에는 감독이나 작가가 유명하지 않아도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보는 걸로 상황이 변화했다”고 전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전반이 재미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대중문화가 야키니쿠와 김치처럼 일본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난 6월 도쿄에서 초연한 연극 ‘기생충’은 한류의 위력을 새삼 확인케 했다. 막을 올리기 한 달 반 전 이미 매진됐다. 40회 공연에 4만 명가량이 관람했다. 이 대표는 “봉준호 감독이 연극을 먼저 생각하고 쓴 각본이라는 말을 듣고 무대화를 구상했다”고 소개했다. 수해가 주요 사건으로 등장하는 원작 영화와 달리 일본인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지진을 활용했다. 반지하 주택이 없는 일본인들의 주거 환경을 고려하기도 했다. 유명 재일동포 연극인이자 영화감독인 정의신이 대본과 연출을 맡았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가 연기한 영화를 누가 감히 연극으로 옮기겠냐고 하더라”며 “우리는 그런 두려움은 없으니 봉 감독과 CJ ENM에 제안을 해 제작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영화 흥행이 잘 된 데다 유명 배우들(후루타 아라타, 미야자와 히오, 이토 사이리, 에구치 노리코 등)이 출연하겠다고 나서 연일 매진사례였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출연 배우들이 바빠 추가 공연을 못했는데 앞으로 배우를 교체해 가며 더 오래 공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드라마 2편 정도를 연극으로 옮기려는 작업을 추가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요즘 한국 감독이나 배우를 만날 때마다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라고 말한다. 한국 영화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과 일본이 다양한 협업을 시도할 수 있어서다. 그는 “한국 감독이 일본 영화를 연출하거나 한국 배우가 일본 영화에 출연하는 일 등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유념할 점은 있다. 이 대표는 “한일 간 역사 문제는 협업에 장애가 되지 않게 서로 이해해가며 풀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한일 정치권과 학계에서) 공통된 역사인식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인끼리도 논의를 해봐야 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타면서 일본인들이(한국 영화가 너무 잘나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한국 영화에도 우려할 점이 있다. 이 대표는 “소수 대형 투자배급사들 때문에 다양성이 사라질 수 있다”며 “한국 영화사들이 일본 영화사들이 했던 실수를 범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1960년대 세계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일본 영화가 도에이와 다이에이, 니카쓰 등 소수 대형 영화사들의 시장 지배로 침체를 겪은 일이 재현될 수 있다는 쓴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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