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생활의 여유 즐기는 새로운 생활 양식
과밀한 도시 떠나 자연이 주는 자유에 열광
촌캉스, 5도2촌, 러스틱 카페 등 변주 거듭
"시골에 와서 자유로움을 얻었어요. 자연엔 사람을 위한 공간이 넉넉하거든요. 충분한 공간에서 나만의 속도와 스타일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죠."
소박한 시골 생활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 '은는이가'를 운영하는 방윤호(41)씨. 갤러리 큐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다른 삶을 모색해보고 싶다는 꿈을 안고 수년 전 아내와 함께 독일로 떠났다. 독일 체류 생활에서 방씨 부부가 발견한 것은 새로운 직업도, 삶의 목표도 아닌 '자연'이었다. "독일 남부를 여행하던 중 독일 최고봉인 추크슈피체산을 마주했을 때 온몸에 전율이 돋았어요. 그 뒤로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충분히 즐기며 사는 독일 사람들을 보고 생각했죠. 나도 자연 속에서, 복잡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한국에 돌아온 부부는 전남 영암에서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수려한 월출산이 지척에 보이는,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비포장길을 통과해야 나오는 외딴 동네다. "이렇게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부부는 꾸준히 영상 일기를 이어갔고, 어느덧 정기적으로 소식을 챙겨보는 구독자가 2만여 명이다. 영상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보다 더 영화 같다" "더 늦게 전에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부러움 섞인 반응 일색이다. "별 거 아닌 시골 일상에 보내는 반응을 보면서 놀랄 때가 있어요. 탈도시를 꿈꾸며 시골 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실감하죠."
촌으로 향하는 사람들
촌스러움과 불편함의 상징이던 '촌'은 어쩌다 동경의 대상이 됐을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원형의 자연, 소박한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로 향한다. 고즈넉한 자연에 매료돼 시골에 정착하고, 휴가 때마다 이름도 생소한 산간벽지의 마을과 농가를 찾아간다. 오지 캠핑장은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고, 간판 하나 없는 시골 카페에 주말마다 사람이 몰린다. 말 그대로 시골스러운 생활을 선망하는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 방식이 하나의 트렌드이자 소비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방씨 부부처럼 도시를 떠나 시골에 눌러앉는 '이도향촌'부터 '5도2촌(5일 도시에서 일하고 2일 시골에서 휴식)', '촌캉스(시골+바캉스)', '러스틱 카페(시골풍 카페)'까지 다양한 색깔로 진화 중이다.
유행에 민감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사이에서 특히 호응이 높다. 주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에게 날것의 자연과 시골 감성은 그 자체로 새로운 취향이자 놀이 문화로 여겨진다. 인스타그램에는 '#벼세권', '#논밭뷰', '#노을뷰' 같은 해시태그(#)를 단 이미지가 넘쳐나고, 유튜브에서는 럭셔리한 호텔 리뷰보다 조용한 시골 영상의 조회수가 더 많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지민(29)씨는 최근 '벼세권' 성지로 불리는 강원도의 한 민박집에서 '러스틱' 휴가를 보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오지의 민박집을 찾아다닌다는 김씨는 "언제부턴가 도시와 사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시간이 날 때마다 민박집을 찾아 예약한다"며 "종일 자연을 보며 멍 때리고 동네를 산책하는 시골 생활의 루틴이 나에겐 최고의 휴식"이라고 말했다.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예전에도 한적한 시골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같은 개념이 생기고 유유자적한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때문에 러스틱 라이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골서 주말 즐기기...'세컨드 하우스' 인기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러스틱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 농가에 있는 낡은 주택을 개조하거나 자기 땅에 세컨드 하우스를 지어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확실히 늘었다. 생활의 근거지는 도시에 두고 주말에는 거주민으로서 시골에 머물며 여가를 즐기는 '5도2촌', '4도3촌(4일 도시에서 일하고 3일 시골에서 휴식)'은 워라밸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에게 익숙한 주거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세컨드 하우스 열기를 타고 공장에서 주택의 각 부분을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주택 시장이 이례적인 활황을 맞고 있다. 이동식 모듈러 주택을 제작하는 권주일 주택백화점 대표는 "불황으로 건설업 전체가 침체에 빠져 있는데 유일하게 모듈러 주택만 지난 4월에 이미 전년도 매출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며 "마음 편히 찾을 수 있는 제2의 거처를 마련하고 싶다는 주거 수요가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이중생활의 부담에 주저하는 이들을 위한 체험형 서비스도 덩달아 인기를 끈다. 어촌이나 산촌 오지에 자리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빌려주는, 일명 '러스틱 카페'다. 날것의 자연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휴식을 감각하고 소비하는 것. 이에 대해 오찬호 박사는 "자본주의 경쟁 체제가 공고화되면서 휴식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이어지고, 자기주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러스틱 라이프 역시 힘든 세상에서 심리적 위기와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잠깐이라도 호흡을 끊어주고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해석했다.
3년 전 문을 연 강원 홍천의 카페 '러스틱 라이프'는 이름 그대로 러스틱 정신에 충실하다. 숲 해설가가 가꾼 야생 정원과 자연 친화적인 오두막, 온실 등을 한 팀에게만 독점적으로 제공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미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시골 생활에 매료돼 귀촌한 목수이자 카페 운영자인 고병율(38)씨는 "따분할 만큼 조용한 분위기에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100%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며 "도시를 완전히 떠날 수는 없더라도 탁 트인 자연경관과 고요함을 내 것처럼 누린 작은 경험이 위안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상 대대로 거주한 200년 된 한옥을 카페로 개조한 강원 강릉의 '르꼬따쥬' 역시 시간제로 운영되는 러스틱 명소다. 시간별 예약을 통해 독채 전체를 대관하고, '팜크닉(농장+소풍)'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른 이들과 마주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시골집을 즐기고, 농장을 체험할 수 있어 시골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카페의 주인인 송지혜(40) 대표는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수년 전 러스틱 카페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카페와 농장을 가꾸며 러스틱 라이프를 만끽하는 모습을 SNS를 통해 적극 공유하고 있는 그는 "나 역시 과밀한 도시에서 바쁜 삶을 살다가 자연으로 눈을 돌려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원형의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자유와 감동을 보다 많은 분들이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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