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주의 '동물복지 이야기'
매년 여름 복날이 돌아오면 ‘개 식용은 동물 학대’라는 주장과 ‘왜 개만 특별 대우’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의 의미 없는 논쟁이 반복되어 왔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상황이 다른 것 같다. 여름이 오기 전부터 관심이 뜨거웠고, ‘개를 먹느냐 마느냐’보다는 방법과 시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여야에서도 각각 개 식용을 종식시키고 개농장주의 폐업을 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 18일, 동물복지국회포럼(공동대표:박홍근, 한정애, 이헌승 의원)과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국민행동’ 공동 주최로 ‘개 식용,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국회에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발의된 법안들을 국회가 처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현 국민의당 대표는 축사를 통해 “개 식용 종식을 위한 노력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변화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개 식용 문제와 ‘동물 비물건화’ 민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강조했다.
발제자로 나선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는 개 식용의 ‘현재’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미 개의 도살은 불법이다. 2018년 대법원이 전기 쇠꼬챙이로 개를 감전시켜 죽이는 도살 방법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판결했다. 올해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법으로 허가한 도축 외에 임의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했다.
일각에서는 ‘개를 먹을 개인의 권리 보호가 먼저’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현행 식품위생법상으로도 개는 식품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동물성 원료에 포함되지 않아 조리, 판매 등이 불법이다. 전 대표는 도살 작업장에 구더기가 가득한 동물 내장이 방치된 환경, 죽은 개와 산 개들이 구겨진 운송 차량과 폐사 원인도 모르는 개를 도축해 판매하는 상황 등의 자료를 제시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관리 부재가 공중보건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지난 6월 대표 발의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은 사실상 사회가 밟아야 할 수순, 개 식용 종식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법안은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 또는 도살하거나 개를 사용하여 만든 음식물 또는 가공품을 취득·운반·보관·판매·섭취하거나 이를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다만 현실을 감안해 5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 법이 시행되면 정부는 ‘개 식용 종식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식용 개 농장의 폐업 및 전업 지원, 농장주가 소유권을 포기한 개의 보호, 관리에 관한 사항 등이 계획에 포함된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기본계획에 따른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게 된다. 정부는 식용 개 농장 종사자, 동물보호 관련 단체 추천인 등이 포함된 ‘개 식용 종식 위원회’를 구성해 기본계획 및 주요 정책 등을 심의해야 한다.
폐업하려는 농장주는 정부에 폐업지원금을 신청하게 되는데, 지원금 신청 시 남은 개들에 대해 동물보호센터나 민간 동물보호시설로 이관 등 법에 정한 방법에 따라 처분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폐업지원금 외에도 시설물 잔존가액 및 시설 철거비 등을 농장 폐쇄 시기에 따라 우선 또는 차등 지원하도록 해 폐업 시기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고자 했다. 또한 폐업한 농장주가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거나 취업을 원하는 경우 직업 교육·훈련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개고기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특별법안의 통과는 개 농장주들의 생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총 18곳의 농장 폐쇄 및 전업을 지원한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HSI)에 따르면 대부분의 농장주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요가 감소해 큰 수익이 나지 않았고, 사회적 인식 변화로 가족이나 주위에도 떳떳하지 못했다. 한국 HSI 이상경 팀장은 “농장주들은 개 식용 산업에 미래가 없음을 인지하고 있고,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대다수의 농장이 폐업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토론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전과 달라진 정부 기관의 태도였다. 경기도청의 김종선 팀장은 “경기도가 개 농장의 동물학대 행위를 단속하고 있지만 민원을 통한 사후 처리 방식은 한계가 있다”며 “특별법이 통과되면 사전 예방 차원의 대처가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세진 농림축산식품부 반려산업동물의료팀 과장은 “개 농장의 불법 행위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최대한 현행법을 집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농식품부, 환경부, 식약처 등 주요 부처들도 최근에는 개 농장 단속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갖고 있으며, 발의된 특별법안의 처리 과정에도 국회에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토론자로 나선 서울대 수의과대학 천명선 교수는 “개 식용 종식은 찬반이 아닌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그는 “개 식용 금지를 반대하는 측에서도 개인의 취향과 권리에 대한 법적 금지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어서이지, 개를 식용으로 다루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천 교수는 식품위생 측면에서는 허가되지 않은 축산물은 먹지 못하게 금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각각의 축종은 생산 단계별 기준이 존재하는데, 개고기를 먹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없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만, 홍콩, 필리핀, 태국 등은 이미 개 식용을 금지했고, 중국도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개를 가축 목록에서 제외했다. 한국처럼 개 식용이 음지에 남아 있지만 합법적 도축은 불가능한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의 국가들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금지하는 법을 마련하거나 무허가 도축은 불법으로 보고 규제하고 있는 추세이지, 개의 도축 기준을 마련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
2021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구성된 사회적 합의 기구인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온 듯하다. 개 식용은 더 이상 개인의 식습관이나 문화적 특성 문제가 아니라 동물복지와 공중보건 측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과제다. 토론회에서 의견이 모아진 것처럼, 국회는 제안된 법안을 신속히 처리해 법적 공백을 메우고 폐업 지원, 남은 개들의 보호 등 산업을 닫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는 통과된 법안에 따른 절차를 차질 없이 이행하는 한편, 법안과는 별도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불법 행위를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폐업하는 농장에서 포기하는 개들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인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곧 학대 예방 위주인 현행 ‘동물보호법’을 모든 동물에게 일정한 삶의 질을 보장하는 ‘동물복지법’으로 개편하겠다고 한다. 이제 소모적인 개 식용 논쟁은 중단하고 다른 농장동물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정말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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