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흡혈파리·잔불과 사투
현지 소녀는 감사의 손편지도
국력에 걸맞은 역할 고민 계기
"걱정도 많이 했고 긴장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난 3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만난 권기환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대장의 얼굴엔 안도감이 어렴풋이 묻어났다. 캐나다 퀘벡주(州)에서 발생한 역대급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150명 구호대원과 함께 안간힘을 썼던 지난 한 달의 기억이 스친 듯했다. 전날 귀국한 여독과 함께 잔뜩 몸을 움츠리게 했던 긴장에서 막 벗어난 이의 표정이었다.
외교부는 지난달 2일 캐나다 퀘벡주에서 발생한 산불 진화를 위해 긴급구호대를 르벨 쉬르퀘 비용 지역으로 급파했다. 산림청 70명, 소방청 70명, 한국국제협력단(KOICA) 3명, 국립중앙의료원 3명과 외교부 6명으로 꾸려진 151명. 지난 3월 튀르키예 지진 구호를 위해 파견한 구호대 118명보다 많은 역대 최대 규모 인력이었다. 권 대장은 “캐나다 측 요청을 받고 소방청과 산림청에 선발을 부탁, 산불 진화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로 인력을 꾸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베테랑을 위주로 대규모 구호단을 꾸렸지만 진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경험 부족을 꼽았다. 해외긴급구호대가 설립된 2007년 이후 이번을 포함해 10번의 해외 파견 중 대규모 산불과 맞서 싸운 것은 처음인 탓이었다.
"작업 방식 자체가 생소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산불 진화는 민가로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불의 억제(contain)가 최우선 목표였지만, 캐나다에서는 일일이 화점(火點)을 찾아내 화재의 재발생 가능성을 없애는 게 중요했습니다."
작업 방식과 환경 모두 녹록지 않았다. 하루 12시간 이상, 한 달간 휴식은 단 이틀에 불과했다. 찜통더위의 작업 현장에는 진화복을 뚫고 들어와 피를 빠는 흡혈파리(Black Fly)가 기승을 부렸다. 불 때문에 뿌리가 약해진 고목들은 예고 없이 쓰러지며 구호대를 위협했다. 권 대장은 "흡혈파리들에겐 얼굴에 쓰는 그물망조차 소용이 없었다"며 "물리면 심하게 붓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작업 기간 구호대원들은 총 1,400번 의료진을 찾았다. 한 명당 10번 가까이 진료를 받았다는 얘기다.
권 대장은 현장의 어려움 속에서도 "산불 진화율 94%를 달성했다"고 강조했다. 한국 구호대가 투입됐던 르벨 쉬르퀘 비용 지역은 여의도 면적의 1,400배 정도에 달하는 64만 ㏊가 산불에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다. 그는 "소방청, 산림청 등 여러 기관에서 나온 인력들이라 처음에는 '원팀'으로 일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며 "활동 중반을 넘기고 나서 일심동체가 되면서 목표한 만큼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역 주민들 호응과 캐나다 정부 측 반향은 구호대에게 큰 힘이 됐다. 아빠 손을 잡고 베이스캠프를 찾아 한글로 직접 쓴 감사의 손편지를 전달한 소녀는 구호대에게 감동이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귀국길에 오르던 구호대가 탄 공군 수송기를 깜짝 방문해 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시아에서 온 구호대는 한국이 유일했다.
이번 경험이 향후 구호대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가치 외교와 기여 외교 얘기를 많이 하지만, (이런 게) 거창한 구호를 외친다고 달성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대한민국의 국력과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강조하며 "(그런 부분에)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며 이번 구호대 활동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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