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노르웨이 대사관저서 '로열 오더 오브 메리트' 수훈
지난해 15년 만에 입센 희곡 23편 노르웨이어 원서 완역
"노르웨이 국왕님이 주시는 훈장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울음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 연구의 국내 권위자인 김미혜(75)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명예교수는 "세계 연극의 중요한 자산이자 현대 연극의 출발점인 입센을 한국도 알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힘들고도 행복하게 보낸 15년의 시간이 떠올랐다"며 감격에 겨워 울먹였다.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노르웨이 대사관저에서 김 교수에 대한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 '로열 오더 오브 메리트' 수여식이 열렸다. 노르웨이 하랄 5세 국왕을 대신해 안네 카리 한센 오빈 주한 노르웨이 대사가 김 교수에게 훈장과 휘장을 전달했다.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은 노르웨이와 인류에 기여한 노르웨이인 또는 외국인에게 주는 훈장으로, 문학·연극 분야의 한국인으로는 김 교수가 첫 수훈이다.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연극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2010년 국내 첫 입센 연구서 '모던 연극의 초석 헨리크 입센'을 출간했다. 지난해 5월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노르웨이어 원서를 번역한 입센 희곡 전집을 10권 분량으로 펴냈다. 입센의 희곡 25편 중 입센이 자신의 작품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은 2편을 제외한 23편을 모두 담았다. 영어로 된 교재로 노르웨이어를 독학하고 영어-노르웨이어 사전을 찾아가며 작업해 무려 15년이 걸렸다. 김 교수가 입센 연구에 뛰어들기 전까지 한국에서 출간되고 공연된 입센의 작품은 모두 일본어 또는 영어 중역본이었다. 김 교수는 "200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입센 서거 10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에 한국연극학회장 자격으로 참석해 여러 나라의 입센 수용 현황을 듣고 자극을 받아 입센 연구와 희곡 번역에 나서게 됐다"며 "세계 각국의 입센 자료를 모아놓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입센연구센터에도 당시에는 한국어 자료가 전무했지만 현재는 내 책이 비치돼 있다"고 말했다.
입센 연구를 향한 김 교수의 열정은 일찌감치 노르웨이 현지까지 전해졌다. '모던 연극의 초석 헨리크 입센'이 2011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후 김 교수는 이듬해 노르웨이 내무부의 초청으로 국제 입센 페스티벌에 참석했고 이후로도 여러 차례 노르웨이를 방문했다. 이 같은 김 교수의 활동에 대해 오빈 대사는 "입센 희곡 번역에 대한 헌신과 기술 그리고 열정은 입센과 노르웨이 전반에 대한 평가를 드높일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와 한국의 문화적 유대를 심화시키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번역 덕분에 최근에는 한국 연극 무대에서도 '인형의 집'뿐 아니라 '헤다 가블러'(2012), '사회의 기둥들'(2014), '왕위 주장자들'(2017) 등 입센의 대표작이 꾸준히 공연됐다. 김 교수는 자신의 노력이 한국 연극계가 레퍼토리를 다양화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노르웨이라고 하면 우리와 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입센 외에 욘 포세 등 주목할 작가가 많다"며 "좀 더 다양한 문화예술로 눈을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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