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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강 철근 아예 안 들어간 주차장"... 건설강국의 민낯,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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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강 철근 아예 안 들어간 주차장"... 건설강국의 민낯, 왜

입력
2023.08.01 04:30
수정
2023.08.01 18:44
3면
0 0

철근 154개 필요한데 154개 없어
대학원생이 핵심 계산 맡는 재하도급
전문성 부족, 비용 줄이는 날림 공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LH 무량판 구조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LH 무량판 구조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해외 수주를 자랑하는 건설강국 'K건설'의 민낯은 우리의 일상생활 공간인 지하주차장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LH 아파트 중에선 지하주차장 154개 기둥에 보강 철근이 모두 빠져 있는 곳도 있었다.

정부가 31일 공개한 '철근 누락 공공아파트' 15곳을 살펴보면, 공사비가 더 들어가는 분양 아파트(5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사를 맡은 시공사도 대림건설(현 DL이앤씨 자회사 DL건설) 같은 대형사부터 한라·동문·삼환·이수 등 중견 건설사까지 다양했다.

이번 사태는 특정 업체의 단순 실수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재하도급 관행 △전문성 부족 △비용 절감을 위한 날림 공사 등 건설업계의 총체적이고 구조적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 터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무량판 주차장' 왜 문제 됐나

자료-국토교통부

자료-국토교통부

이번에 철근 누락이 발견된 곳은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지하주차장이다. 4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이후 정부는 같은 구조의 LH 아파트 91곳에 대해 전수조사를 했고, 이번에 15곳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

무량판 구조는 수평으로 무게를 지탱하는 보를 사용하지 않고 수직으로 세운 기둥이 넓은 슬래브(지붕층)를 받쳐주는 기법이다. 기둥 여러 개와 벽체로 천장을 받치는 라멘 구조에 견줘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고, 그만큼 철근과 콘크리트를 덜 사용해 건축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넓은 공간 확보가 필수인 지하주차장을 지을 때 이 공법을 주로 사용한다. 국내에선 2017년부터 널리 퍼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구조 안전성이 생명인 아파트 같은 주거시설엔 이 공법을 거의 쓰지 않는다. 또 아파트는 관련 법에 따라 2~4년 주기로 정밀안전점검을 받는 만큼 이번 사태와 큰 관련성은 없다.

LH 역시 사업비 절감(연간 750여억 원)을 위해 2017년부터 아파트 주차장을 지을 땐 이 공법을 도입했다. 무량판 구조는 기둥으로만 슬래브를 지탱하는 만큼 기둥에 전단보강근이라는 철근 부품을 추가해야 한다. 기존 가로·세로로 엮여 있는 철근을 칭칭 감아 지탱력을 키워 주는 역할을 하는데, 15곳에선 이 보강 철근이 필요한 만큼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15곳 중 수서역세권(A3), 수원당수(A3) 단지의 경우 누락된 철근이 한 자릿수(각 5·9개)에 불과했지만, 남양주별내(A25)는 보강 철근이 40%나 빠졌다. 양주회천(A15·공사 중 단지)은 154개 기둥에 들어가야 할 보강 철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철근이 어디에 몇 개나 들어가야 하는지 구조 계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계산은 제대로 됐지만 도면에서 빠지면서 이런 사태가 빚어졌다는 게 LH 설명이다. 다만 남양주 별내를 포함해 이미 입주를 한 5개 단지는 시멘트 강도가 높아 전면 재시공 필요성은 낮다고 LH는 설명했다.

총체적·구조적 문제

4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구조물이 파손돼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4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구조물이 파손돼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가장 먼저 설계 단계에서 문제가 빚어지긴 했지만, 전문가들은 여러 구조적 문제가 더해지면서 설계 부실을 잡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설계의 재하도급, 직원의 역량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보통 LH가 설계 업무를 건축사사무소에 맡기면, 이는 다시 건축구조기술사에게 하도급되고, 기술사는 대학원생 등에게 핵심 계산을 맡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현장마다 비용 절감이 최우선이다 보니 설계비 역시 낮게 책정된다. 결국 설계 기간이 짧고 오류 검토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관행이 굳어졌다는 게 최 교수 진단이다. 이 같은 오류를 시공사와 감리, 최종적으로 발주사인 LH가 걸러 줘야 하지만, 이런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일각에서 LH의 전관예우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한 건설사 고위 임원은 "원자잿값이 급등하자 건설사가 많은 인력을 투입하지 못하고 현장 전문성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아무래도 공공건설 현장은 그런 문제에 더 취약하다"고 말했다. 김규용 충남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원가 절감의 압박이 심하고 인력의 노후화 등 전문성도 떨어져 시공관리 환경이 과거보다 상당히 열악해졌다"며 "정부가 이런 점을 아울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욱 기자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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