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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 신상공개와 신상털기의 연좌제

입력
2023.08.0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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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연좌제의 그림자들- 2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고유정의 경찰 조사 당시 모습. 경찰은 2019년 6월 그의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연합뉴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고유정의 경찰 조사 당시 모습. 경찰은 2019년 6월 그의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연합뉴스

성인 자녀의 범죄에 부모가 ‘도의적 책임’을 자임하며 ‘사죄’하는 예는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경우 드물지 않다. 그건 일종의 정치행위지만, 넓게 보면 관습적 연좌의 한 예다.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가족주의 정서상 법적 주체인 개인의 책임을 가족 구성원에게 묻는 걸 당연시한 나머지 ‘도의적’ 책임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을 경멸하기도 한다. 2007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이 미국 국적 한국계 이민 1.5세대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주미 한국 총영사관이 공식 사죄한 일까지 있었다.

연좌의 그물은 흉악 범죄자의 신상공개 요구나 SNS 등을 통한 사적인 ‘신상 털기’와도 은밀히 이어져 있다. 피의자나 범인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여론에는 동기나 취지와 별개로,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이 공개됨으로써 피의자 가족과 친인척 등이 겪을 수 있는 가시적-비가시적 연좌적 피해에 대한 배려가 배제돼 있기 쉽다. 오히려 그 정도는 달게 받는 게 도리라는 무의식적 정서가 깔려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피의자의 미성년 자녀는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할 수 있고, 반려자는 직장 생활을 지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족 전체의 생계도 위협당한다. 형사법의 하나인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8조 2항은 범행 수법과 피해 규모,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범죄 방지 예방에 필요할 경우 등에 한해 예외적으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근대-권위주의 시대의 연좌제가 권력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법적-제도적으로 지탱됐다면, 오늘날의 이른바 신연좌제는 문화와 관습, 인권을 넘어서는 정서적 응징의 충동으로 지탱되고 합리화된다. 신연좌제는 희생자만 있을 뿐 뚜렷한 가해자가 없어 전근대의 연좌제보다 은밀하고 그래서 더 비열해질 수 있다.
연좌제는 집단주의-전체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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