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개편, '실업급여 덜어내기' 방점
짧은 수급 기간·정부 무책임 등 같이 살펴야
정부여당이 실업급여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적은 사람에게 덜 주자'는 게 골자다. 실업급여를 비롯한 고용보험 제도가 안정화한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이 '퍼주기'에 가까워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정부여당은 주장한다. 구직자들이 실업급여를 마구잡이로 쓴다며 국민의힘은 '시럽급여'라는 단어도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내세운 논리와 팩트는 일부만 사실이다. 또 '△실업으로 인한 노동자의 생계불안을 해소하고 △생활 안정 도우며 △재취업의 기회를 지원한다'는 실업급여 제도 본연의 취지와 거리가 멀다.
한국이 실업급여 개편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야 할지를 실업급여를 먼저 도입하고 누수 방지책 등을 오랜 기간 다듬어온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살펴봤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지난 5월 발간한 '한국의 포용적 사회를 위한 급여 개혁: 실직 중 소득 보장' 보고서도 참고했다.
① 실업급여가 많다? : 수급 기간 짧은 것도 문제
한국 고용보험법상 실업급여는 '퇴직 전 3개월 평균임금의 60%'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프랑스(75%), 스위스(70%), 독일(유자녀이면 67%·무자녀는 60%) 등 선진국에 비해 낮다.
정부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 수정을 벼른다. 현행법은 평균임금 60% 적용 시 실업급여 수급액이 뚝 떨어지는 저소득자에겐 '최저임금의 80%'를 지급한다. 최저임금과 연동되므로 하한액은 매년 올라간다. 정부여당은 하한액이 너무 높아 구직자들이 일자리로 돌아갈 유인을 찾지 못한다고 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의 73.1%가 하한액(184만7,040원)을 적용받았는데, 그중 38.1%(전체 수급자의 27.9%)는 실직 이전 세후 소득보다 높은 실업급여를 받았다. OECD도 지난 5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러한 상황이 '이례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한국은 수급 기간이 짧다는 점은 간과돼 있다. 한국에선 연령 및 보험 가입 기간 등에 따라 120~240일(약 4~8개월)간 실업급여를 받는다. 덴마크(24개월), 노르웨이(12~24개월), 프랑스(6~24개월), 독일·룩셈부르크(6~12개월) 등보다 짧다. 재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고령 구직자를 보면, 한국은 50세 이상 구직자는 270일(약 9개월)까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반면, 프랑스는 53, 54세 구직자는 30개월, 55세 이상 구직자는 36개월까지 보장된다. OECD는 실업급여 하한액 보정 필요성과 함께 장기실업자에 대한 제도적 구제책 마련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정부여당 논의에서 후자는 빠져 있다.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짧으면 재취업에 필요한 탐색, 교육, 훈련 등의 기회가 줄어든다. 저숙련·저임금 노동자가 '더 나은 일자리'로 향할 기회를 좁힐 수 있다. 수급기간 확대가 재정적 부담이라면, 기간에 따라 수급액을 조정하는 식의 대안을 검토할 수 있다. 벨기에는 실업 첫 3개월엔 65%를, 이후부터는 60%를 지급한다.
② 실업급여 받기 쉽다? : 기준 높일 땐 취약계층 더 챙겨야
정부여당은 실업급여 수급 요건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은 실업 직전 18개월을 기준으로 6개월을 일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이 생기는 반면, '선진국에서는 보통 12개월을 일해야 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이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네덜란드, 스웨덴, 프랑스, 핀란드 등은 한국처럼 6개월을 기준으로 둔다. 다만 스웨덴은 6개월이라는 기준을 두면서도 △매월 최소 60시간 근무 △매월 40시간 근무하며 6개월간 최소 420시간을 근무 등의 세부조건으로 둔다. 한국이 최소 근무 기간을 무조건 12개월 등으로 늘리기 전에 논의해 봄직한 대안이다.
독일, 스위스, 벨기에 등 최소 근무 기간을 12개월로 두는 곳도 많다. 그러나 많은 국가가 취약계층을 위한 예외조항을 설치했다. 독일은 '처음부터 14주 이하로 제한된 단기고용직에 주로 종사했다면 6개월 고용만으로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스위스는 회사가 근로시간을 단축하거나 기상조건으로 일용직 근로자의 작업이 어려운 경우 등에도 실업급여를 준다.
③ 구직자가 일부러 일 안 구한다? : '정부가 도와줄 책임' 살펴야
한국에서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자는 '적극적인 재취업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입사 지원서 제출, 면접, 직업훈련, 사업 준비 등과 관련한 서류를 제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부가 일련의 과정에서 도움을 주거나 제반 서류를 꼼꼼히 점검하진 않는다. 그렇다 보니 개인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개인이 노력을 하더라도 생산적 결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 OECD도 한국에 "적극적인 구직, 고용 지원 조치를 장려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유럽의 많은 국가에선 정부가 구직 활동 관리·감독은 물론 취업 컨설턴트 역할을 맡는다. 스웨덴에선 실업급여 대상자는 구직 방법 설계 단계부터 정부와 상의해야 한다. 구직자는 한 달에 최소 6개의 일자리에 지원해야 하는데, 정부는 구직자 면담을 기반으로 추천 직업을 권한다. 구직 활동에 소홀한 실업급여 수급자에 대한 제재도 체계적이다. '1단계 경고 → 2단계 실업급여 무지급 1일 → 3단계 무지급 5일 → 4단계 무지급 10일 → 5단계 조건 충족 때까지 자격 박탈' 식으로 제재 수위가 올라간다. 덴마크 정부는 필요에 따라 모든 입사지원서 사본을 공유하도록 해 구직 활동의 성실성을 점검한다.
④ 잘려야만 실업급여? : 자발적 실업 지원도 고민 필요
한국의 실업급여는 자발적 실업자에게는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다. OECD는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므로 완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자발적 실업과 비자발적 실업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평생직장' 개념이 흐려지는 시대적 상황과도 연관된다. OECD는 "근로자가 직업이 자신의 기술, 경험에 적합하지 않다면 적합한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 실업급여를 지원해 더 효율적인 노동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많은 국가가 자발적 실업자에게도 원칙적으로 실업급여를 준다. 대신 실업급여 지급 시점을 늦추거나 금액을 축소하는 식의 제한을 건다. 오스트리아는 과실로 인한 퇴사가 아니라면 자발적 실업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는데, 실업 후 첫 4주 동안엔 지급하지 않는 식으로 차등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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