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민족 혼 끌어올리는 작품 만들어 주길"
'태종 이방원', KBS가 5년 만에 선보인 정통 사극
최근 수많은 사극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왔다. TV 속에는 자식 교육을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왕실 여성들도 있었고 왕의 애절한 사랑 또한 존재했다. 그러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정통 사극은 극히 드물었다.
1956년 데뷔해 오랜 경력을 쌓아온 이순재가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순재는 tvN·티빙 드라마 공동 프로젝트 '오프닝(O'PENing) 2023'의 온라인 제작발표회에 참석했을 당시 "현역으로 활동하는 고령자로서 방송국에 부탁할 게 있다"고 말해 시선을 모았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극을 재정립해달라. 미안하지만 지금의 역사극은 역사극이 아니다"라면서 "위기 때 우리는 하나가 됐다. 그 역사성을 바탕으로 해서 민족 혼을 끌어올리는 작품을 만들어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실제로 안방극장에서는 정통 사극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2021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태종 이방원'이 방영됐는데 이 작품은 KBS가 2016년의 '장영실' 이후 5년 만에 선보인 정통 사극이었다. '태종 이방원'은 고려라는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던 여말선초(麗末鮮初) 시기, 누구보다 조선의 건국에 앞장섰던 리더 이방원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정통 사극을 찾아보기 어려웠을 뿐,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달콤한 로맨스를 담은 KBS2 '연모'가 '태종 이방원'과 비슷한 시기에 방송됐다. 두 드라마의 뒤를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tvN '슈룹'이 큰 인기를 끌었다.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든 중전의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했다. 지난 2월에는 tvN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2'가 막을 내렸다.
시청자들은 퓨전 사극의 재미에 열광했다. '연모' 속 왕세자가 된 여성은 신선한 설정으로 시선을 모았고 '슈룹'의 발 빠른 중전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로맨스의 큰 비중 또한 퓨전 사극의 묘미였다. 사극 속 로맨스는 해외 시청자들까지 관심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다.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의 배우 도미니크 피시백 또한 "'연모'를 봤는데 너무 로맨틱해서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한국 드라마에 빠지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제작진에게도 퓨전 사극은 매력적이었을 터다. '연모'는 방송 시작 전 '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며 작가의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다른 드라마들 역시 비슷한 내용의 자막을 사용했다. 퓨전 사극은 고증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더불어 자유롭고 다채로운 소재로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왔다. 전쟁 신이 자주 등장하는 정통 사극은 제작비가 많이 필요한데 이 부분에서도 퓨전 사극이 유리했다.
그러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 또한 방송국의 의무다. 사극은 시청자들이 쉽고 재밌게 역사를 배울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다. 극장가에서는 김한민 감독의 '명량' '한산: 용의 출현'이 각각 2014년과 지난해에 애국심을 불러일으켰고 현재는 '노량: 죽음의 바다'를 완성하기 위한 작업이 이어지는 중이다. 세 작품은 이순신 3부작으로 불린다. 안방극장에도 이 작품들처럼 깊이 있는 드라마들이 필요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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