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 행진한 수만 명 반시위대 집결
지지자 집회도 열리는 등 이스라엘 분열
바이든 만류에도 네타냐후 ‘강행’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추진하는 ‘사법부 무력화’ 입법이 최종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올해 1월부터 약 30주 동안 이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도 네타냐후 총리와 연립정부가 '사법 개혁'의 이름으로 입법을 밀어붙였다.
24일(현지시간) 의회 크네세트는 2, 3차 법안 독회(심의)를 열고, 표결 끝에 법안을 가결 처리했다. 이스라엘은 두 동강이 났다.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이 ‘민족주의적 종교국가’로 회귀하길 바라는 민심과 ‘민주국가’가 되기를 기대하는 민심이 충돌하면서 요란한 후폭풍을 예고했다.
예루살렘 포스트 등 이스라엘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후 사법 정비 관련 기본법 개정안 2건의 표결을 앞두고 예루살렘의 의회 주변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폭염 속에서도 수도 텔아비브부터 예루살렘까지 나흘간 70㎞를 행진한 수만 명 규모의 반정부 시위대는 전날 의회 근처 공원에 텐트촌을 세워 밤을 새웠다. ‘결전의 날’인 이날에는 오전 7시쯤 의회 앞에 도착해 서로 팔짱을 끼고 인간 벽을 만들어 입구를 막았다. 경찰은 물대포를 발사하며 진압에 나섰다.
일간 이스라엘하욤은 “최근 국영방송 칸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민의 46%가 개정안을 반대한다”고 전했다. 찬성하는 여론도 35%에 달하는 만큼 텔아비브에서는 정부를 지지하는 집회도 열렸다.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며 이스라엘은 사실상 국가 폐쇄 상태가 됐다. 회원 수만 80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의 최대 노동운동 단체는 정부의 법안 강행에 반발해 총파업을 예고했고, 150개 민간 기업도 동참하면서 쇼핑몰 등이 문을 닫는다. 1만 명 이상의 이스라엘 예비군은 복무 거부를 선언했다.
또 전직 육군참모총장과 국가정보기관 모사드의 수장, 경찰청장 등 15명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스라엘의 안보와 민주주의에 심각한 피해를 줬다”고 비판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정부는 개혁이라지만… ‘개악’ 반발 목소리
이번 법안은 각료 임명을 비롯한 행정부 업무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대법원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내용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행정부의 권한을 사법부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게 정부 주장이지만, 사법 장악이자 개악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배임·비리 혐의 등으로 재판받는 네타냐후 총리를 위한 방탄용 입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스라엘 바깥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24일 성명에서 “지금 이스라엘 지도부의 사법 개편은 더욱 분열적으로 번지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이 직면한 여러 위협과 도전을 놔두고 지도층이 사법 개편을 서두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민의 저항과 군의 반발, 최대 우방인 미국의 경고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22일 밤늦게 병원에 입원해 심박조율기 삽입술을 받고 퇴원한 네타냐후 총리는 법안 투표에 어떤 일이 있어도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극우 연정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법안이 가결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날 법안 처리가 끝내 강행되면서 이스라엘 사회는 시계제로 상태에 놓일 공산이 크다. 사법부가 정부의 독주를 최종적으로 견제할 수단이 사실상 사라졌다.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정부 입법은 반대파와의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예루살렘 포스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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