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버린' LGBT 군인들 보고서
2000년까지 정신과 약물 치료받고
결국 군복 벗어... 우울증에 경제난
"보상금·연금 지급해야" 요구 거세
"성소수자(LGBT)라는 이유로 끔찍한 학대를 당한 군인들에게 영국을 대표해 사과드립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과거 영국 군대가 LGBT 군인들을 상대로 전기 충격과 성폭력 등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게이 또는 레즈비언 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원해 간 군대에서 내쫓긴 군인도 적지 않았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보상 대책 수립을 약속하며 고개를 숙였다.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BBC방송 등에 따르면, 영국 국방부 산하 'LGBT 재향 군인 독립 검토' 위원회는 1967~2000년 LGBT 재향 군인들을 대상으로 군대 내 성적 학대와 폭력, 집단 괴롭힘 등이 자행됐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해당 기간 복무했던 LGBT 군인 1,145명이 부대에서 경험했던 온갖 가혹 행위가 보고서에 낱낱이 담겼다.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군을 선택한 이들은 오히려 군대에서 인권을 마구 유린당했다. 입대 후 '동성애 치료'를 이유로 정신과에 보내졌다. '상담'을 받은 게 아니다. 전기 충격과 호르몬 관련 약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군은 성병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며 불필요한 신체검사를 일삼기도 했다. 성 정체성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은 물론, 성폭력 피해까지 당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엔 '강제 전역'을 당했다. "성정체성이 군대란 조직에 부적합하다"는 게 군에서 밝힌 이유였다.
강제로 군복을 벗은 피해자들은 경제난을 호소하기도 했다. 과거 해군에 입대했다가 성소수자란 이유로 쫓겨났다는 한 전직 군인은 "정신적 충격에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우울증까지 얻었다"며 "성소수자란 사실이 발각될 두려움에 다른 직업을 구하지도 못해 사회에서 고립됐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군인은 "군에서 버려진 뒤 노숙 생활을 했고, '가족의 수치'란 이유로 어머니한테도 버림받았다"고 털어놨다.
영국은 1967년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했다. 하지만 영국군의 '성소수자 복무 금지령'은 2000년까지 지속됐다. 이날 의회에 출석한 수낵 총리는 "이 땅의 법보다 수십 년 뒤늦은 영국의 끔찍한 실패"라며 "영국을 위해 봉사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성적 학대와 폭력, 혐오와 괴롭힘을 견뎠다"고 말했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도 성명을 통해 "LGBT 군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며 "성 정체성을 이유로 사랑하는 직장에서 쫓겨난 기분을 상상할 수 없다"고 사과했다.
보고서는 5,000만 파운드(약 822억 원) 규모의 보상금 지급과 연금 수급 자격 검토, 계급 복원 등이 포함된 49개 항목의 보상 방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월리스 장관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충분히 토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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