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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시크

입력
2023.07.18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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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85년 9월 12일 프랑스 도빌에서의 제인 버킨. AFP 연합뉴스

1985년 9월 12일 프랑스 도빌에서의 제인 버킨. AFP 연합뉴스

여자는 30대 중반 이혼녀다. 집에서 딸이 파티를 연다. 반 친구인 15세 소년이 참석한다. 여자는 고독해 보이면서도 어른스러운 면모를 지닌 소년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전자오락을 함께 하며 친구 같은 사이가 된다. 모성애 엇비슷한 감정은 어느 날 돌변한다. 소년 역시 싫은 눈치가 아니다. 그렇게 금지된 사랑은 시작된다. 프랑스 여성 거장 아녜스 바르다(1928~2019)의 ‘아무도 모르게’(1988)는 지금 만들어져도 문제적 영화가 될 만하다.

□ 반감이 들 만도 한데 여자의 행동은 은근히 설득력이 있다. 여자의 도발적인 면모를 섬세하게 표현해 낸 배우 제인 버킨의 연기 덕분이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던 버킨의 스크린 밖 삶 역시 영화 감상에 적지 않게 영향을 줬으리라. 프랑스 유명 가수 세르주 갱스부르(1928~1991)와의 떠들썩했던 사랑은 그의 자유분방한 성정을 상징한다. 두 사람은 다른 이성과 스캔들을 이어가면서도 12년을 연인으로 지냈다.

□ 버킨은 프랑스 스타일의 정수로 여겨지고는 했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개성 있는 얼굴, 무심한 듯 상냥한 표정이 ‘프렌치 시크(French Chic)’를 대변할 만했다. 수수하게 멋을 부리던 버킨은 왕골가방을 애용했다. 1983년 어느 날 비행기 탑승 후 왕골가방을 선반에 올리다가 가방 속 물건들이 쏟아졌다. 옆자리에 앉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최고경영자 장 루이 뒤마(1938~2010)가 그 모습을 보고선 버킨을 위해 가죽가방을 만들어주었다. 장차 에르메스 대표 제품이자 부의 상징이 될 ‘버킨백’의 탄생이었다.

□ 정작 버킨은 버킨백을 자주 쓰지 않았다. 2015년엔 악어가죽 생산 방식을 문제 삼으며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는 공개서한을 에르메스에 보내기도 했다. 숱한 이들이 동경하는 버킨백에 이름을 빌려준 당사자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셈이다. 버킨은 인도주의 사업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사라예보를 장갑차를 타고 방문했다. 가수와 배우와 사회활동가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숨진 버킨이 가방 이름만으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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