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라스트 세션' 리뷰
"이게 신의 계획이고 나 같은 인간은 그걸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라고? 내 손자 하이넬레는 다섯 살에 결핵으로 죽었어. 그런 애를 그렇게 죽이다니. 그놈의 신의 계획 참 대단하구만! "
구강암 투병 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무신론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자신보다 마흔두 살이나 어린 기독교 작가 C.S. 루이스에게 소리치듯 말한다. 마지막 남은 힘까지 힘겹게 쥐어짜낸 프로이트의 목소리는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강력한 반대인 동시에 임종에 임박한 스스로에 대한 위안의 말로 들렸다. 20세기 대표 지성 프로이트(1856~1939)와 루이스(1898~1963)의 가상의 논쟁을 담은 연극 '라스트 세션'의 한 장면이다. 평생을 연구에 바친 프로이트의 삶과 프로이트를 연기하는 노배우 신구(86)의 60년 연기 인생이 오버랩되면서 삶과 죽음,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같은 인생의 근원적 질문도 머릿속을 스쳤다.
미국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아맨드 M.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영감을 얻어 쓴 '라스트 세션'은 2009년 미국에서 초연됐다.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 작가이자 무신론자에서 기독교로 회심(回心)한 루이스가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국내에서는 2020년 초연과 지난해 재연에 이어 8일부터 대학로 티오엠 1관에서 세 번째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연극의 구성은 간결하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인 1939년 9월 3일. 41세의 루이스는 83세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았다. 프로이트의 런던 햄스테드 서재를 재현한 원세트 무대에서 두 사람은 신의 유무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거대 담론을 다루지만 무겁지 않고 역동적 움직임 없이 대사 중심으로 흐르는 연극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대화의 주제가 삶과 죽음, 전쟁, 사랑, 섹스 등으로 옮겨 가면서 객석에선 종종 웃음이 터졌다. 두 지성의 대화는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말싸움이라기보다 상대의 관점을 이용해 나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토론은 사라지고 양극단의 주장만 살아남은 시대이기에 상반된 견해의 두 사람이 날카롭지만 냉정하고 차분하게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현실에서 벗어난 판타지로 보이기도 했다.
프로이트 역은 신구와 남명렬이, 루이스 역은 카이와 이상윤이 번갈아 연기한다. 신구와 카이가 함께 출연한 회차의 공연은 프로이트의 학문적 욕심보다는 인간적 면모가 도드라졌다. 공연 개막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급성 신부전으로 심장 박동기 삽입 수술을 받았다고 밝힌 신구는 움직임에는 큰 불편이 없어 보였지만 대사를 잊는 순간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죽음이라는 결말에 가까워지면서 신체적 고통에 내몰리자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애쓰는 과정의 하나로 해석돼 연극의 흐름에 크게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공연은 9월 10일까지. 신구 출연 회차는 이미 전석 매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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