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자 건강권 보장 제도개선 토론회
"요양보호사란 직업이 한마디로 하면 ‘참 힘듦’입니다. 돌봄노동은 체력의 한계를 매일같이 느끼며 버티는 일이에요. 하루에도 수십 번 어르신 체위 변경, 화장실 이동, 휠체어 착석, 프로그램 참여 등… 어르신이라고 몸이 다 왜소한 게 아니라 100㎏ 넘는 분도 있어 옮길 때 힘이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허리 무릎 팔목에 압박도 굉장히 많이 갑니다."
최현혜 요양보호사 11일 토론회 발언 중
장시간 야간 근무를 하던 날 밤 요양보호사 최현혜씨는 깜빡 잠이 들었다가 얼굴에 이상함을 느끼고 화들짝 깼다. 거울을 보니 입이 오른쪽으로 획 돌아가 있었다.
"원래 야간 근무 때는 2인 1조로 일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어 저녁 8시부터 아침 9시까지 어르신 20명을 혼자 챙겼어요. 당장 현장에서 빠지면 어르신들을 돌볼 사람이 없으니 아침에 일 끝나고 병원에 갔는데, 구안와사(안면마비)라고 하더군요. 근데도 대체인력을 못 구해서 그냥 일했죠."
요양보호사와 보육교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등 돌봄노동자들이 11일 건강권 보장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고자 국회에서 증언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공공운수노조가 개최한 '돌봄노동자 건강 실태조사 발표 및 건강권 보장 제도개선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다.
공공운수노조가 돌봄노동자 52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건강권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섯 명 중 세 명(60.4%)은 손목과 무릎 질환, 허리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서비스 이용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경우도 절반 가까이(47%) 됐다.
최씨처럼 아파도 대체인력이 부족해서 참고 일하거나, 산재 신청을 해서 휴업급여를 받고 싶어도 돌아왔을 때 일감을 못 구할까 봐 쉬지 못하는 돌봄노동자들이 많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최씨는 "유급병가든 무급병가든 대체인력을 못 구하면 쉴 수 없다. 연차를 써도 내 자리를 동료가 메워야 하니, 그 동료에게 노동강도를 전가하는 것 같아 미안해서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대진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요양보호사나 장애인활동지원사 같은 (자택) 방문형 노동자는 산재로 쉰 다음 다시 일하려고 할 때 이용자 연계가 안 돼 고용이 중단되기도 한다"며 "짧은 휴업 때문에 장기간 고용을 포기해야 하니 아프건 산재건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보육교사 신혜란씨는 혼자서 아이 열 명, 스무 명도 맡는 보육교사들은 방광염과 식도염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서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다 보니 화장실도 마음 놓고 못 가고, 밥도 아이들 식사시간에 틈을 타 허겁지겁 먹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는 "어린이집에서 산재 신청은 말도 못 꺼내게 하고, 직접 신청하면 퇴사를 종용하거나 조용히 해고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돌봄노동자 건강권 문제는 결국엔 고용 안정과 임금, 인력 확충 등 근로조건 개선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현행 산재 인정 기준과 산업안전보건법령이 돌봄 노동 특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권남표 직장갑질119 공인노무사는 "모든 산재 제도가 제조업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보니, 성별 따라 근골격계 산재 승인율(인정률)도 여성은 60.4% 남성은 72.8%로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현 산업안전보건법령은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해 사업주에게 중량물 제한, 중량표시, 작업시간 배부 등 (질환 예방을 위한) 의무를 정하고 있지만, 물건이 아닌 인격체를 다루는 돌봄노동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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