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1시경. 서울 보신각은 30도 안팎의 무더위로 길바닥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였습니다. 청계천 인근에서 사람들이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할 더운 날씨에도 보신각 주변은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엉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이날은 매주 열리던 민주노총과 보수단체 집회 이외에도 한꺼번에 3개의 집회가 예고됐습니다. 특히 경찰은 보신각 앞에서 열리는 남녀노소 다양한 참가 인원이 속속 모여드는 집회와 대각선 맞은편 고령자들이 모인 집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집회 주최측이 준비한 트럭의 위치가 보행자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집회 관계자들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보신각 쪽에는 ‘이제는 때가 됐다, 개 식용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손팻말을 든 시민들이 서 있었습니다. 대각선 맞은편에는 ‘개고기 당당하게 먹읍시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오는 11일 초복을 앞두고 '동물자유연대',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등 30개 동물보호단체들과 대한육견협회가 맞불 집회를 가진 현장입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겠다는 논의기구가 사실상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세우며 장외로 나온 것입니다.
보신각 쪽에 자리잡은 동물보호단체 집회에 참가한 300여 명의 사람들 중에는 10대 청소년도 있었습니다. 동물보호단체를 후원하기 위해 알아보던 중 집회 소식을 접하고 참여하게 된 이승민, 김도은(14) 군은 개 식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요즘 시대에서 있을 수 없는 느낌”이라며 “살인과 비슷한 행위라고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개라는 동물이 사람을 지켜줄 수도 있고, 사람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헌신하고 있는 만큼 그 동물을 먹는 행위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처럼 개를 먹는 행위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여론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1년 출범한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사회적 합의 위원회)가 지난해 3월 전국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한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5.5%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80.7%는 ‘앞으로도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이 여론조사만 봐도 ‘개는 먹는 동물이 아니다’라고 합의된 거나 마찬가지”라며 “사실상 사회적 규정이 된 상태인 만큼 정부가 종식안을 하루빨리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에 선 이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생존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식용견 농장을 운영하는 이영병(57) 씨는 이날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집회 참석을 위해 상경했습니다. 그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개 식용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와중에 지난 4월 대통령부인 김건희 여사까지 ‘개 식용 종식’ 발언을 했다고 알려지면서 더욱 궁지에 몰렸다는 뜻입니다. 이씨 주변에는 ‘대통령 부인이 무슨 권한으로 개 식용 금지를 추진하나’라는 내용의 육견협회 현수막도 걸려 있었습니다.
이씨는 “사육자의 생존권이 박탈당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 인간으로서 우리의 존엄성은 어떻게 되느냐”며 “가족이 딸려 있는데 거리로 내몰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어차피 사양산업이고, 농가에는 거의 다 노인들뿐”이라며 “10~20년 정도 영업을 보장해 생존권을 보장해 주는 게 그리 어렵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동물보호단체들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개 식용 산업 자체를 불법적으로 보고 있는 만큼, 더는 개 식용 산업에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게 이들의 논리입니다. 그래서 이날 집회 사회를 맡은 방송인 안혜경 씨는 “내년에는 (개 식용 종식이 이뤄져서)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힐 정도였습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의 집회에서는 개 식용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영상이 상영됐고, 개들을 위한 추모의 묵념도 진행됐습니다. 이후 개 식용 종식을 추진하는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 정치인들도 참석해 발언을 보탰습니다. 최근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이날 단상에 올라 “현재 정부 각 부처가 법을 제대로 집행만 해도 개 식용은 종식될 수 있다”면서 “오히려 사회적 합의 위원회가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식약처, 환경부, 농식품부 등 관련 정부 부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20대 국회의원 시절 개 식용 종식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명예교수도 “애초에 불법인 개 식용 산업 관계자들과 사회적 합의를 논의하는 게 모순이었다”며 “책임자들이 기존 법을 제대로 집행했다면 이렇게 더운 날 사람들이 집회에 나서는 사회적 비용을 치를 일도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지방의회 조례로는 최초로 개식용 종식 조례를 발의한 서울시의회 김지향 의원도 단상에 올라 발언했습니다. 김 의원은 최근 조례 논의가 무산된 데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식품위생법상 강력한 단속을 약속했다”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움직이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발언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간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오랫동안 사회적 논의도 해 왔다”며 “이젠 사회적 분위기도 무르익었으니 법으로 그 분위기를 보증해야 할 때”라며 정의당 차원에서 한 의원의 특별법안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집회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반대편에서도 퍼포먼스가 이어졌습니다. 10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육견협회는 준비한 테이블에 개고기 수육을 펼쳐놓으며 시식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수육을 먹는 가운데,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사무총장은 “몸에 좋고 맛 좋은 개고기를 드셔보시라”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권했습니다. 다만, 경찰의 통제 하에 진행되는 만큼 실제 개고기를 시식한 시민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조희경 대표는 이에 대해 “당사자들이 생업을 주장하며 버티고 있는 것은 그만큼 몰려 있다는 것”이라며 “어떻게 대응해야 합리적인 해결책을 도출할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전진경 대표 역시 “이미 우리는 개 식용을 하느냐 마느냐의 논의는 끝났다고 생각한다”며 “비합리적인 보상 요구를 그만두고 더 나은 출구전략을 논의하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집회 마지막 순서로 거리 행진을 펼쳤습니다. 이들의 행진은 광화문을 돌아 조계사로 이어 다시 보신각으로 돌아오는 경로였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손팻말을 들어 ‘개 식용을 종식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구름조차 걷혀 햇볕은 뜨거웠지만, 이들은 아랑곳 않고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습니다. 커다란 목소리와 타악기 소리는 주말을 맞아 광화문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행진이 끝난 뒤, 양측은 별 다른 충돌 없이 해산하며 집회는 마무리됐습니다. 길 하나만 건널 만큼 양측은 가까웠지만, 여전히 개 식용을 둘러싼 인식 차이와 논의 과정에서 생긴 앙금은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정부가 이 간극을 좁힐 묘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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