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위성사진·항로 분석... "막을 수 있었다"
그리스, 침몰 전 최소 13시간 동안 '구조 지연'
해안경비정, 인근 해역서 침몰 지켜보기만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난민 약 750명을 태우고 이탈리아로 향하던 낡은 어선 '아드리아나'의 이 같은 구조 신호가 감지된 건 지난달 13일 오후 1시쯤(현지시간)이었다. 이탈리아 당국의 구조 요청을 받고 유럽국경·해안경비청(Frontex·프론텍스)이 그리스 앞바다 지중해 해상에 도착했다. 프론텍스는 "선박이 위험할 정도로 과적 상태"라며 "도움 없이는 항구에 도착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시간 후 그리스 해안경비대 헬리콥터가 난민선 상공을 지났다. 그러나 그리스 해안경비정이 도착한 건 이날 자정쯤, 그것도 달랑 한 대뿐이었다. 구조 작업은 전혀 없었고, 다음 날 오전 2시 6분 난민선은 속절없이 침몰했다. 표류하던 난민선과 승객이 차디찬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까지 13시간을 그리스 당국은 수수방관만 했다는 얘기다.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당시 위성사진과 항로 추적 데이터 분석, 생존자 인터뷰 등을 종합해 "난민선 침몰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반난민' 그리스, 구조 대신 난민선 밀어내기
NYT에 따르면, 난민 600여 명의 떼죽음을 야기한 아드리아나호의 침몰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그럼에도 반(反)난민 정책을 펴는 그리스는 구조 작업엔 팔짱만 끼며 난민선이 자국 영해 바깥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밀어내기' 작전을 편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선과 구조전문가 대신 무장한 특수부대원 4명을 포함, 총 13명을 경비정 한 대에 태워 보낸 게 단적인 근거다.
심지어 난민선 침몰 전 최소 3시간 동안 인근 해역에 떠 있던 경비정은 참사 순간을 그저 지켜보기만 한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오후 7시 40분에서 10시 40분까지 난민선은 안정된 항로와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그리스 당국의 설명도 사실과 달랐다. 지난달 9일 오전 북아프리카 리비아 토브루크에서 출항한 난민선은 당초 사흘이면 목적지인 이탈리아에 도착해야 했다. 그러나 이 배는 14일 오전 침몰 때까지 약 6시간 30분 동안 사고 지점 주변을 표류하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항해 둘째 날부터 선박 엔진이 고장 났고, 다음 날 항로를 잃은 게 분명해지면서 탑승객들 사이에 불안이 퍼졌다"고 말했다. 넷째 날 식수와 음식이 바닥 나 어린이 1명 등 6명이 숨졌을 정도로 상황은 열악해졌다. 위험을 감지한 탑승객들은 13일 조난 신호를 보냈다.
난민들의 잇단 구조 요청은 무시됐다
구조 요청은 번번이 묵살됐다. 대신 그리스 당국은 13일 오후 7시쯤 인근을 지나는 유조선 두 척에 "물과 식량을 난민선에 공급해 달라"고만 요청했다. 해당 유조선 '페이스풀 워리어' 선장은 오후 9시 45분 "아드리아나호가 위험하게 흔들리고 있다"고 그리스통제센터에 보고했다. 갑판에 있던 난민들은 도움을 요청했고, 일부는 유조선에 올라타려고도 시도했다.
당시 멀리 떨어진 해역에서 요트를 타고 있던 덴마크인 헨릭 플로르나스는 "메이데이 신호를 두 번 듣고, 난민선 좌표를 제공했다"고 NYT에 말했다. 잇단 조난 신호에도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구조 작전에 나서지 않았다고 NYT는 지적했다.
현장에 경비대가 도착한 건 13일 자정 직전. 하지만 최소 3시간을 인근 해상에 떠 있었을 뿐, 탑승객의 구조 요청은 외면했다. "이탈리아로 계속 가겠다"는 이집트인 선장(22)의 말만 듣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난민 밀수업자인 선장과 선원들은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대금을 받기 때문에 운항을 고집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침몰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해안경비대는 선박 내 혼란으로 탑승객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기울어 뒤집혔다고 주장한다. 반면 일부 생존자는 "해안경비대가 밧줄로 배를 묶어 견인을 시도하던 중 전복됐다"고 증언했다. 그리스 당국은 난민선 침몰 책임을 물어 밀수업자 9명만 기소했을 뿐, 해안경비대 측에는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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