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마의 숲' 추도비 철거 반대 시민들
도쿄 상경 집회... 20대 대학생도 참가
"조선인 강제연행은 역사적인 사실"
우익 난입 예고... 장소 옮겨 충돌 피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조선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에 공동 참배한 장면은 한일 양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대통령실은 당시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가운데는 강제징용 피해자도 포함돼 있다"며 의미를 부각하기도 했다.
반면 일본 군마현에선 2004년 일본 시민들이 건립한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철거 위기에 놓여, 일본 시민들이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2일 오후 3시 일본 도쿄 신주쿠역 북쪽 알타빌딩 앞 광장에선 '군마의 숲 조선인 추도비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 모임'이 상경 집회를 열었다. 도쿄와 가와사키 시민도 합세해 총 40여 명이 철거 반대를 외쳤다.
군마의 숲 추도비는 2004년 일본 시민단체인 '군마 평화유족회'가 애초 10년 기한으로 군마현과 합의해 다카사키시 소재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설립했다. 비석에는 "일제가 조선을 식민 지배하던 시기 많은 조선인이 일본의 광산이나 군수공장 등에 동원됐고 목숨을 잃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밝히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다시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 일본어와 한국어로 나란히 적혀 있다.
하지만 아베 신조 내각 당시 역사수정주의 바람으로 세력을 얻은 일본 우익단체 중 하나인 '소요카제'가 추도비 설치 연장에 반대했다. 전화와 이메일을 통한 집요한 항의에 군마현이 굴복하자 시민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에서만 승소했고 항소심과 최고재판소에서 연달아 패소해, 현재 지자체의 철거 집행만 앞둔 상태다.
시민 모임을 주도한 마쓰모토 히로미는 "극우단체의 요구에 따라 실제로 철거가 단행된다면 전국의 추도비에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만약 그렇게 되면 극우단체의 혐오 발언과 차별, 증오범죄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며 철거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역시 군마현에서 상경한 사토 마쓰오는 "과거 추도비 앞에서 열린 행사에서 '강제연행'이란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철거 이유"라면서 "강제연행은 학문적으로도 인정된 것이고 수많은 증거가 있는데도 배외주의자들은 부정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대학교 1학년 여성은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고, 조선인 차별 문제와 식민지 시대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며 "강제동원 문제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는 일본 정부 주장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며칠 전부터 우익단체가 난입을 경고한 탓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본 경찰도 투입돼 시위대를 보호했다. 다만 이날 우익단체가 다른 장소에서 차량 시위를 벌이는 것을 본 주최 측이 집회 직전 차량이 가까이 올 수 없는 광장으로 장소를 옮겨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마쓰모토는 "우익단체는 우리 집회뿐 아니라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피해자를 추모하는 집회에서도 방해 행위를 일삼고 있다"며 차별·혐오 단체에 대한 당국의 단호한 대응을 촉구했다. 현재 도쿄도는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 방지 조례를 운영 중이고 이를 어긴 단체의 명칭을 공표하고 있지만, 위반 시 벌칙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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