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부터 '만 나이 통일법' 전면 시행]
"자녀가 만 나이 거부" 학부모들 진땀
"생일 지나야 담배판매?" 편의점 혼란
"엄마 배 속 나이까지?" 외국인은 환영
두 남매를 키우는 양길정(39)씨는 최근 둘째인 아들(2018년 10월생)에게 ‘만(滿) 나이’ 개념을 가르치다 진땀을 뺐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고 이듬해 첫날 한 살을 더 먹는 ‘한국식 나이(세는 나이)’에 익숙한 아들은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여섯 살”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0세에서 시작해 생일이 지날 때마다 한 살씩 늘어나는 만 나이 기준으로는 4세다. ‘만 나이 통일법’ 시행 소식을 접한 그는 차근차근 만 나이 셈법을 알려주며 “이제 너는 네 살이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나는 여섯 살 ‘형님’인데 왜 다시 네 살이냐”고 버럭 화를 냈다. 양씨는 28일 “나이가 어려진 일곱 살 첫째도 ‘엄마가 열 살에 컴퓨터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멀어졌다’며 슬퍼했다”고 말했다.
① "어린 나이 싫어!" 난감한 학부모들
이날부터 법적ㆍ사회적 나이를 만 나이로 일원화하는 만 나이 통일법(행정기본법 및 민법 일부개정법률)이 전면 시행됐다. 이미 행정, 법률 등 공적 영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만 나이를 써온 터라 시행 첫날 큰 혼란은 없었다.
일상에선 달랐다. 대부분 국민이 한국식 나이에 익숙한 탓에 여기저기서 “불편하다”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에게 새로운 나이 셈법을 가르치느라 속을 태웠고, 바뀐 제도를 잘 모르는 술집ㆍ편의점 직원들은 “손님 생일까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세계 유일의 ‘한국 전통 나이’ 문화가 낯설었던 외국인 유학생들 정도가 “긍정적 변화”라며 새 제도를 반겼다.
만 나이가 두려운 부류는 단연 학부모다. 이날 온라인 맘카페에는 “첫돌에 양초 1개, 두 돌에 2개 식으로 개념을 설명했다”, “미역국 먹을 때 한 살 먹는다” 등의 여러 팁이 공유됐다. 문제는 한국식 나이에 비해 한두 살이 줄어드는 만 나이를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0년 2월생 자녀를 키우는 30대 김모씨는 “이제 3세라고 가르치니 바로 싫다고 짜증을 냈다”며 “아이들은 형, 언니를 동경하는 습성이 있어 어려지는 걸 꺼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2020년 2월생 딸을 둔 이모씨도 “2019년 12월생 이웃 아이에게 언니라고 불렀는데 만 나이로는 동갑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푸념했다.
② "술 팔 때 생일도 따져야?" 편의점 혼선
주류나 담배를 팔 때 나이를 확인해야 하는 편의점에서도 혼선이 빚어졌다. 청소년보호법상 담배 및 주류 구매 연령은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연 나이’가 기준이다. 생일과 관계없이 2004년생부터는 술ㆍ담배를 살 수 있다. 만 나이 통일법의 예외 조항인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2004년생 생일 안 지났는데 담배 판매해도 되나요” 같은 문의 글이 적지 않게 올라왔다. 서울 용산구에서 편의점을 하는 40대 유모씨는 “담배를 찍으면 포스기에 ‘2004년생부터 구매 가능’ 공지가 뜬다”면서도 “싸이패스(신분증 감별기)에 신분증을 대면 생일 안 지난 2004년생은 판매 불가라고 떠서 팔아도 되는지 헷갈렸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③ "한국 나이 퇴출, 속이 후련" 유학생은 반색
달라진 한국 제도를 적극 환영하는 건 정작 외국인 유학생들이다. 파키스탄 출신 유학생 함자(30)씨는 “엄마 배 속 시기까지 나이로 치는 한국식 셈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무례를 범할 일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흡족해했다. 30대 직장인 이모씨도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한국 나이와 국제 나이를 두 번씩 설명하면 어김없이 ‘왜 한국 나이는 다르냐’는 질문이 나와 곤욕을 치르기 일쑤”라며 “불편함을 한결 덜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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