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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스토킹’ 기준 상향한 미 대법원… “스토커 처벌 더 어려워졌다”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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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스토킹’ 기준 상향한 미 대법원… “스토커 처벌 더 어려워졌다” 비판도

입력
2023.06.28 20: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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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에 수년간 'DM폭탄' 스토킹 유죄 판결 파기
"대면 없는 온라인 스토킹, 발신자 고의성이 관건"
"단순 위협 발언, 범죄까진 아냐... 표현 자유 해당"
한국,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에 '온라인 영역' 특정


지난해 10월 미국 연방대법관들이 워싱턴에 위치한 연방대법원 청사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미국 연방대법관들이 워싱턴에 위치한 연방대법원 청사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방금 흰 지프차 탔지?” “네 인간관계는 엉망이야. 차라리 죽어.”

미국의 한 남성이 '찍어 둔' 여성에게 몇 년간 퍼부었던 메시지 수천 건의 일부다. 그러나 미 연방대법원은 “스토킹으로 보긴 힘들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내세우면서 온라인 스토킹 기준을 엄격히 제시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온라인 스토킹 범죄 처벌이 더욱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년간 문자폭탄' 스토킹 유죄 판결 뒤집혔다

미국 ABC뉴스 등은 연방대법원이 스토킹 혐의로 기소된 빌리 카운터맨에게 징역 4년 6월을 선고한 콜로라도주(州) 법원의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주심인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의견서에서 “자신의 말이 위협적이라고 피고인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대법관 9명 중 7명이 이 같은 의견을 밝히면서 유죄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수년간 온라인 스토킹을 이어온 혐의로 콜로라도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 받은 빌리 카운터맨. 콜로라도교정당국 제공.

수년간 온라인 스토킹을 이어온 혐의로 콜로라도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 받은 빌리 카운터맨. 콜로라도교정당국 제공.

피고인인 카운터맨은 2014년부터 약 2년간 가수 콜스 월렌의 페이스북 계정에 ‘내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암시하거나 위협하는 메시지를 수천 건 보낸 혐의로 기소됐다. 욕설은 물론, ‘섹시한 데이트를 하자’는 성희롱도 했다. 겁에 질린 월렌이 그를 차단하면 새 계정을 만들어 계속 메시지를 발송했다. 월렌은 스토커가 직접 찾아올까 두려워 콘서트를 취소하거나, 밤에 불을 끄고 자지도 못할 만큼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2017년 콜로라도주 법원은 카운터맨의 스토킹 혐의에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직접 접촉도 없었다는 점에서 위협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했고, 오히려 자신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맞소송을 냈다. 미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연방대법원 판례 중 하나는 “헌법적 보호 대상에서 ‘진정한 위협’은 제외된다”는 것인데, 이번 판결은 결국 카운터맨의 ‘문자폭탄’을 ‘진정한 위협’으로 보지 않은 셈이다.

미국의 포크 가수 콜스 월렌이 2015년 지역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하고 있다. 수년간 온라인 스토킹을 당하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월렌은 재판 이후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 위키피디아 캡처

미국의 포크 가수 콜스 월렌이 2015년 지역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하고 있다. 수년간 온라인 스토킹을 당하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월렌은 재판 이후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 위키피디아 캡처


온라인 스토킹 '고의' 입증 못 하면 기소 어렵다는 대법

미 CNN방송은 대법원이 온라인 스토킹과 관련해 ‘진정한 위협’, 즉 기소가 가능한 기준을 상향했다면서 이번 판결의 의미를 짚었다. 피의자가 ①자신의 메시지가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②이를 무시하고 강행했을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는 얘기다.

법조계에서는 그러나 ‘진정한 위협’에 대한 엄격한 기준 적용으로 온라인 스토킹 범죄 처벌이 힘들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 와이저 콜로라도주 법무장관은 “스토킹은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함에서 기인하는 범죄”라며 “본인의 행동이 피해자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많은 스토커가 처벌을 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메리 프랭크스 조지워싱턴대 교수도 수정헌법 1조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대표해 낸 성명서에서 “피해자들이 살해당할 위험마저 키웠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소속 브라이언 하우스 변호사는 “자신의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예측하지 못해 감옥에 가게 된다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며 “피고인의 고의를 입증할 책임을 정부에 부여해 최소한의 숨통을 틔운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에 위치한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전경.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워싱턴에 위치한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전경.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한국은 스토킹처벌법에 '온라인' 영역 특정

한국에서도 온라인 스토킹은 새로운 범죄 유형으로 떠오르는 추세다. 지난 21일 의결된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은 무분별한 문자·전화는 물론, 온라인에서 상대방 개인정보를 유포하거나 사칭하는 행위를 ‘스토킹’으로 명시했다. 처벌 근거 조항을 명확히 한 것이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특정인에게 반복적으로 불안을 조성하고 공포나 위압감을 발생시켜 위협을 느끼도록 만드는 행위’를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자폭탄’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지난달 서울동부지법은 회사 상사에게 “밤마다 생각난다” “만나자” 등 문자메시지를 50여 회 보낸 30대 남성에게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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