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 상징' 독일 베를린 슈타지문서고 방문
김홍균 주독 대사 "북한 인권 문제 떠올라"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독일 베를린의 한 건물. 내부의 굳게 잠긴 철문을 여는 순간, 오래된 책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을 가득 채운 철제 선반, 그 위에 켜켜이 쌓여 있는 문서들이 내뿜는 냄새였다. 27일(현지시간) 방문한 '슈타지문서고'의 풍경이다.
'슈타지(Stasi)'는 옛 동독의 비밀 경찰인 '국가안전보위성'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들은 1950~1990년 동독 시민들의 '공적 영역'은 물론, 내밀한 사생활까지 들여다봤다. 전화 감청, 도청 장치 및 몰래카메라 설치, 주변 인물을 통한 탐문, 직장·주거지 수색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이 같은 슈타지 활동은 2006년 개봉한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을 통해 대중에도 널리 알려졌다.
슈타지문서고는 슈타지가 생성한 '불법 자료'를 모아둔 곳이다. 1990년 국가안전보위성이 있던 곳에 그대로 설립됐다. 김홍균 주독일 한국 대사의 미하일 홀만 독일 연방기록원장 면담 등을 계기로 관계자들과 함께 내부를 직접 둘러봤다.
"문서고, '어떤 역사 만들어야 할지' 보여주기에 중요"
슈타지는 베를린에 중앙본부를 두고, 그 밑에 15개 조직, 다시 그 아래에 209개 조직을 설치하는 형태로 운영됐다. 밑바닥에서 차곡차곡 모은 정보는 윗선으로 충실히 보고됐다. 이 문서들을 늘어놓으면 길이가 111㎞에 달할 만큼 기록물 양은 방대하다. 감시 활동에 투입된 공식 요원만 9만여 명, 비공식 요원은 동독 역사 40년간 60만 명 이상으로 파악된다. 친구, 은사, 직장 동료, 이웃 등 '평범한 사람들'이 슈타지에 정보를 제공했다.
다그마 호베슈테트 슈타지문서고 실장은 "중복된 이름 등을 고려할 때 피감시자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건 어렵지만 600만 개의 이름이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슈타지는 그 자체로 '누가, 어디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메시지였어요. 사람들이 '알아서' 국가에 순응하도록 한 겁니다."
일반 시민들은 1992년부터 자신의 문서를 열람했다. 300만이 넘는 열람 요청이 접수됐는데, 대부분의 수요는 초기 5년 동안 몰렸다. 이젠 열람 수요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방대한 문서를 거대한 건물에 빼곡하게 보관하는 이유는 뭘까. 관계자들은 "그 자체로 '억압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홀만 원장은 "당시 사람들이 어떤 억압 속에서 살았는지 확인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지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슈타지 작업물 둘러본 한국 대사 "북한 인권 문제, 타협 안 돼"
김 대사는 슈타지문서고 기록물을 본 뒤 "정확한 실상 파악이 힘든 북한 내 인권 침해 문제를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환기시킨다"고 소감을 밝혔다. 옛 동독과 같은 상황에 북한 주민들이 놓였을 가능성이 짙은 만큼 정치적 상황이나 이념적 차이 등을 이유로 북한 인권 문제를 눈감아선 안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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