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적정성 검증 요청 쇄도
인건비, 시멘트 등 자잿값 폭등
#1.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 서희스타힐스는 입주 예정일이 10월로 2개월가량 밀렸다. 시공사 서희건설이 인건비, 원자잿값 상승 등을 이유로 150억 원 증액을 요구했지만 조합이 맞서면서 3월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준공일이 늦어지면 이사나 주택 처분 등 어려움이 커지는 데다 소송을 해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조합은 결국 이달 17일 공사비 120억 원 증액을 결정했다. 조합원은 4,000여만 원에 달하는 추가 분담금을 내게 됐다.
#2. 부산 진구 시민공원 재정비촉진지구 2-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은 이달 임시총회를 열고 시공사 GS건설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3.3㎡당 공사비 입장 차(GS건설 900만 원대, 조합 800만 원대)가 좁혀지지 않은 결과다. 경기 성남시 산성구역 주택재개발조합 역시 공사비 갈등으로 이사회의, 대위원회의에서 시공사와의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 조합은 재입찰을 시도하고 있지만 선뜻 나서는 건설사가 없다.
건설현장 곳곳에서 공사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자잿값 폭등 후폭풍이다. 시공사가 몸을 사리는 상황이라 조합은 시공사 구하기도 쉽지 않다.
"공사비 검증해 달라" 요청 쇄도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조합이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의뢰한 건수는 2020년 13건에서 2021년 22건, 지난해 32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이달 20일 기준 14건이다. 공사비 증액비율이 10%를 넘으면 사업시행자(조합)는 한국부동산원에 적정성 검증을 요청할 수 있다. 시공사들이 설계 변경, 자잿값 인상 등 이유로 공사비를 올리자 검증을 요청하는 조합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수년간 공사비는 급격히 올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집계한 4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51.26으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117.93)에 비해 급증했다. 업계는 인건비와 자잿값 인상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건설업 일평균 임금은 2020년 상반기 22만2,803원에서 올해 25만5,426원으로 올랐다. 건설원가의 약 30%를 차지하는 자잿값 중 10% 비중인 레미콘 가격은 비슷한 기간 수도권 기준으로 31% 올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건비뿐만 아니라 시멘트, 마감재 등 건설자재는 값이 안 오른 게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몸 사리는 업체, 시공사 못 찾는 조합
공사비가 급증하자 건설사들은 수주전에서 발을 빼는 모양새다. DL이앤씨는 최근 경기 과천주공 10단지 재건축사업 수주를 포기한다는 안내문을 조합원들에게 보냈다. 수주를 하더라도 수익보다 손해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 연구위원은 "자잿값, 땅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수주할 수 있는 곳은 드물다"며 "당분간은 수익성 중심의 선별 수주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가 집계한 올해 1분기 건설공사 계약액은 68조4,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 감소했다.
조합은 시공사와의 협상에서 '을'이 될 처지다. 조합이 장기간 법인 상대 소송을 진행하기는 부담이 클뿐더러 계약을 해지한다 해도 성남시 산성구역처럼 지금 상황에서는 새로운 시공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합 입장에서는 사업이 지연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시공사의 공사비 인상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예컨대 경기 수원시 권선6구역은 시공사업단과 조합이 공사비 갈등으로 일반분양을 미루다 최근에서야 공사비 증액을 합의했다. 서울 대치1지구재건축정비사업조합도 수차례 협의 끝에 228억 원의 공사비 증액을 합의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이사는 "예전에는 시공사가 조합한테 '우리가 공사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지금은 조합이 시공사를 모셔 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설상가상 업계는 공사비 인상 요인이 더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시멘트 업계는 가격 인상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내년 '제로(0) 에너지 로드맵' 시행으로 에너지 자립률 20%를 달성할 수 있도록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 것도 비용 증가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공사비 증액과 검증 조항을 공사 도급계약서에 명확히 포함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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