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고치다 추락사, 사고 직전 "도와 달라"
'2인 1조' 정부 고시… 강제력 없어 '무용지물'
고용부·경찰,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 등 조사
“혼자선 작업이 힘들어서 못 하겠어요. 도와주세요.”
대형 엘리베이터 회사 정규직 직원이 된 지 이제 갓 5개월. 초보 수리기사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아파트에서 고장 난 승강기를 수리하던 오티스엘리베이터 직원 박모(27)씨가 승강기 통로 6층에서 지하 2층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를 해 도움을 요청한 상대는 같은 회사 소속 선임 작업자 A씨. 불길한 예감이 들어 A씨가 작업 현장으로 뛰어갔더니 박씨가 있어야 할 6층엔 휴대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고 한다. A씨가 도착한 시간은 마지막 통화를 하고서 14분이 흐른 때. 결국 A씨는 지하 2층 승강기 통로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박씨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지만, 박씨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끝내 숨졌다.
경찰,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입사해 올해 초 정규직이 된 정비사였다고 한다. 정규직이 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신입 기사였지만, 당시 그는 이 아파트에서 혼자 수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고 직후 발견 당시 박씨는 헬멧과 안전줄 등 안전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왜 초보 기사가 위험하게 고층에서 최소한의 안전 조치도 없이 혼자 작업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노동조합 측에서는 2인 1조로 수리에 나서야 함에도 강제성 없는 규정 때문에 단독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화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행정안전부 고시인 ‘승강기 안전운행 및 관리에 관한 운영규정’은 승강기 관리주체·유지관리업자가 점검반을 소속 직원 2명 이상으로 구성하도록 정해뒀지만, 처벌 규정이 따로 없는 '권고'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고시 내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인력 감축을 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오티스만 해도 그동안 ‘현장 2인 1조’라는 개념을, '동시 현장 2인'으로 본 게 아니라 "아파트 1개 단지(현장)에 기사 2명을 투입하면 규정상 문제없다"는 논리를 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한 단지에 아파트 동이 수십 개인 대규모 단지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단독 작업이나 마찬가지로 운영됐을 개연성이 있는 셈이다.
방규현 오티스 노조위원장은 “2019년부터 꾸준히 2인 1조 의무화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며 “승강기 업계 전반에서 2인 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신체 절단, 감전, 사망까지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오티스 측은 “기사의 안전을 위한 매뉴얼이 존재하며 안전 관계법령을 준수한다”면서도 사고 당시 왜 박씨가 혼자 근무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해명은 내놓지 않았다.
미국계 기업인 오티스엘리베이터는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경찰과 노동 당국은 사고 원인과 함께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일단 추락사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추락의 원인을 면밀하게 살피기 위한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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