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솔 세 번째 소설집 '말하지 않는 책'
낯선 세계·독특한 서사의 단편 8편 묶어
책이란 무엇인가, 오랜 문학론적 질문들
미궁의 세계 속 그 답을 찾아가는 시간
무대 위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이내 등장한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리고 정적. 펼친 악보에는 음표 하나 없이 'TACET'(타셋·침묵)이라고만 적혀 있다. 그렇게 4분 33초. 3악장의 공연이 끝난다. 미국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의 '4분 33초'.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또 다른 '음악'을 들려준 전위적 작품으로 유명하다. 예술에서 무위 혹은 비움은 무한을 품을 수 있다. 1952년 미국 뉴욕주 우드스톡 야외 공연장에서 초연 당시 관객들이 들은 바람 소리·빗소리·관중의 수근거림, 그 모두가 음악일지 모른다. 미술도 문학도 마찬가지다. 책에 인쇄된 무수한 글자보다 빈 자간을 통해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김솔(50)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말하지 않는 책'은 그런 세계로 독자를 밀어 넣는다. 처음엔 불편하고 불안하지만 곱씹을수록 해방감마저 느낀다. 신간에는 '책이란 무엇인가' '작가와 독자, 그리고 책은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오랜 문학론적 질문 등에 대해 작가만의 답을 써내려 간 단편소설 여덟 편이 수록됐다. 낯선 배경에 독특한 서사 구조, 혼란스러운 인과관계. 작가 특유의 이야기 방식은 독자가 미궁의 세계를 기꺼이 헤매고 싶게 한다. 그러다 다다르는 곳은 여백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문자에 담기지 않고 여백에 담기기 때문"에.
표제작 '말하지 않는 책'은 '책'이란 물질에 대한 집요한 질문을 써내려 간 소설이다. "문자는 신의 발명품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없고, 인간의 발명품인 책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성 때문에 그 안에 적힌 문자마저도 완벽하게 담을 수 없다." 그 결핍 안에서 얽히고설켜 혼란스러운 책과 독자, 등장인물, 저자 등의 운명적 이야기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직조했다.
소설은 마르타 수녀가 위기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시작한다. 라틴어를 누구에게 배운 적 없지만 세 살 때 '마태복음'을 읽은 천재 마르타 수녀는 종교재판에 소환됐다가 풀려난다. 만유의 진리인 '성서'를 부정하는 내용의 책을 썼다는 이유다. 다시는 책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녀원으로 돌아왔지만, 그리스도의 적이 여자의 형상으로 태어난다고 믿는 대주교는 여전히 그녀를 의심한다. 흥미로운 건 펠리페 수사가 마르타의 무죄를 믿는 이유다. 펠리페는 마르타가 스스로 문맹에 이르러 성서를 오독할 수도 책을 쓸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자를 읽는 법도 쓰는 법도 잊어버린 마르타는 문자를 초월한 세계에 도달한 무엇을 상징한다. 펠리페가 그 진실을 써내려 간 두루마리는 인물들을 또 한 번 운명의 소용돌이로 끌고 간다.
'진실'이란 소설집의 또 다른 주제기도 하다. 펠리에의 진실은 진실인가. 작가는 진실을 단언할 수 없는 상황에 우리를 몰아넣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수록작 '낙타의 세계'가 대표적이다. 살해당한 아내와 아들을 최초로 발견한 주인공은, 목격자나 증거가 없어 가장 강력한 용의자이기도 하다. 무엇도 확정적이지 않고 모순적인 상황이 계속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현실의 진실'이 아닐까.
현실을 위트 있게 은유한 작품들도 있다. "독자들은 거의 사라진 반면 작가들이 크게 늘어난" 세상에서 (심지어 범죄자인) 스타 독자의 추천사가 책의 흥행을 좌우하는 세상을 그린 수록작 'Little Boy'(리틀 보이)가 그렇다.
또 2021년 열렸던 '코로나19, 예술로 기록'이라는 행사를 계기로 쓴 단편 '보이지 않는 왕관을 쓴 독재자'는 P금속으로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권력을 가진 독재자가 있던 P국의 몰락의 길을 통해 현재를 조명한다.
다만 김솔의 세계는 친절하지 않다. 그럴 때면 '작가의 말'을 미궁을 빠져나갈 열쇠로 삼을 만하다. "진리는 문자에 (거의) 담기지 않고 여백에 (겨우) 담긴다는 진리를 정작 책은 (애써) 외면한다…. 이 책의 말을 (가깝게) 듣는 대신 이 책에 말을 (건성으로) 거는 독서법을 당신에게 (슬쩍) 추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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