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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학력·경력 쌓은 외국인 인재... 호주·캐나다에 다 빼앗긴다

입력
2023.06.26 14:00
수정
2023.06.28 19:4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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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쇼크가 온다: 2-③ 이주의 재구성]
이민정책 관제탑 '이민청' 필요한 이유

편집자주

1970년 100만 명에 달했던 한 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 년. 기성세대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 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월 독일 연방 내무부에 방문해 관계자에게 이민정책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법무부 제공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월 독일 연방 내무부에 방문해 관계자에게 이민정책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법무부 제공

파키스탄 출신 아라 타라눔(가명·36)은 얼마 전 한국을 떠났다. 한국은 10년 동안이나 머물렀던 타라눔의 '또 다른 조국'. 그러나 그는 지금 한국을 포기하고 캐나다에 산다.

사연은 이렇다. 타라눔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정보통신학과를 전공하며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이공계 인재다. 그는 "한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겠다"며 코리안 드림을 품었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가 보유했던 D-10(취업) 비자는 그가 이전에 지녔던 D-2(유학)비자에서 향후 취득할 E-7(전문인력)비자의 징검다리다.

그러나 이 비자엔 단서조항이 있으니, 6개월(3회 연장 가능) 안에 취업을 못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타라눔은 바로 여기에 걸렸다. 그는 "연구실에서만 일하다 보니 한국어와 문화를 배울 기회가 적어 (외국인이) 한국 학교를 졸업해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며 "그렇다 보니 6개월 안에 한국에서 구직 활동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흡한 제도와 환경 탓에 외국인 인재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있다. 네팔 국적인 A씨는 부인과 함께 D-2(유학)비자를 발급받아 서울대에서 공학을 전공한 뒤 대학 강사로 수년간 근무했지만, 3년 전 한국을 포기하고 호주 이민을 결정했다. 자녀들이 언어 문제 때문에 국제학교에 입학해야 하지만 한국의 비싼 국제학교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A씨 가족은 한국을 포기하고, 언어 장벽이 낮은 호주를 선택했다.

이민청 추진... 이민사회 신호탄 쏜 윤 정부

타라눔과 A씨의 사례에서 보듯, 고학력 이공계 인력을 유치하려면 단순히 관련 비자 문제만을 해결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자녀의 보육과 교육, 언어·문화 적응, 구직 활성화, 직장 문화 개선, 외국인에 대한 편견 해소 등 사실상 거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민정책의 컨트롤타워'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이 1 이하로 떨어진 상황이 5년째(2018년 이후) 지속되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경험하는 한국도, 정부가 '한국형 이민사회' 기틀을 마련할 출입국·이민관리청(가칭) 신설을 추진 중이다. 그간 이민정책은 △법무부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해양수산부 등 여러 부처로 분산돼 있었는데, 업무 중복 및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청을 관제탑으로 삼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과거 정부부터 이민정책 전담 조직의 필요성은 언급됐지만, 이민청 출범의 신호탄을 쏜 것은 윤석열 정부다. 지난해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이민청 설립을 공언했고,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출입국·이민관리 체계 개선추진단'을 설치하며 이민정책 전담조직을 만드는 중이다. 그간 학계나 시민사회의 '논의' 수준에 불과했던 이민의 이야기를 구체화할 '방법'과 '전략'을 찾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우선 이민청 설립을 위한 선제 조치로 △법령 정비와 △이민자에 대한 인식개선 사업에 나섰다. 법무부는 이민정책 관련 법제를 개편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이미 발주했고, 외국인에 대한 이해·존중을 위해 2007년 만들어진 외국인처우법의 전면 개정을 추진 중이다.

올해부터 가시적 성과 나와야

전문가들은 이민청이 실제 이민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 효과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안을 로드맵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민청이 주무부처가 되어 △법무부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해양수산부 등 유관 부처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영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법무부가 그간 간사부처(조정 담당)로서 외국인정책기본계획 등 정책 방향성을 제안하는 등 노력을 해왔지만 유관부처와의 '물리적 결합'에 불과했다"며 "주무부처에 이민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부처 간 '화학적 결합'을 통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이민정책 관련 정부위원회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꾸릴지를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민정책 관련 정부위원회는 △외국인정책위원회(법무부 총괄)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여성가족부) △외국인력정책위원회(고용노동부) 중심으로 이뤄졌다. 세 개의 위원회가 각기 다른 세 개 부처에서 운영되는 현재의 한계를 넘기 위해, △각 위원회를 통합하거나 △주요 권한을 이관하거나 △세 위원회를 포괄할 상급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7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7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이민청 설립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이민사회통합기금(가칭) 신설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들의 체류 갱신 수수료나 한국어능력시험 수수료 등을 재원으로 삼아, 사회통합 프로그램 연구 예산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민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네팔 출신인 수베르 타쿠르 한남대 교수는 "한국에선 이민자들의 시민참여 및 교육참여 기회가 거의 없어 이민자들의 국내 정주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 사실상 없다"며 "정부가 이민선진국과의 우수 인재 유치 경쟁에 이기기 위해선 전반적인 사회 토대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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