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불붙는 '해저 케이블' 패권 경쟁... '바다 밑 냉전'에 디지털 장벽 생기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불붙는 '해저 케이블' 패권 경쟁... '바다 밑 냉전'에 디지털 장벽 생기나

입력
2023.06.15 04:30
0 0

미국, '안보 우려' 이유로 중국 기업들 축출
'디지털 실크로드' 꿈꾸는 중국도 반격 모색
"이러다 전 세계 인터넷망 양분되나" 우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을 형상화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을 형상화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바다 밑에서 '신냉전' 기류가 흐르고 있다. 전 세계 데이터의 99%를 전송하는 해저 케이블 시장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선공에 나선 건 안보상 이유를 내세우며 중국 기업을 축출한 미국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디지털 실크로드'의 꿈을 꺾을 리도 만무하다. 한발 늦게 디지털 패권에 눈을 뜬 중국은 개발도상국을 호시탐탐 노리며 반격을 꾀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냉전 시대를 연상케 하는 '디지털 장벽'이 세워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미국의 중국 축출 '성공적'

1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해저 케이블 시장이 스파이 활동 우려와 미중 간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동서로 양분될 위험에 처해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전 세계 바다 밑에는 450개 이상 140만㎞에 달하는 해저 케이블이 깔려 있다. 전송 가능한 정보량의 측면에서 볼 때, 무선통신보다는 유선통신이 압도적으로 월등한 건 이 때문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해저 케이블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특히 정보 탈취를 통한 스파이 활동과 사보타주(파괴 공작)에 취약한 해저 케이블 시장을 중국으로부터 '절대 사수'하기 위해 애썼다.

실제 미국이 투자하는 해저 케이블 사업엔 중국 기업이 의도적으로 배제됐다. 2018년 아마존과 메타(옛 페이스북)는 미 서부 캘리포니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홍콩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구축을 위해 중국 국영통신사 차이나모바일과 손잡았다. 하지만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행정부가 이를 막아섰다. 1만2,000㎞의 케이블이 이미 깔렸는데도 차이나모바일은 컨소시엄에서 결국 탈퇴해야 했고, 결국 해당 사업도 좌초했다. 이 프로젝트 관계자는 "수억 달러가 태평양에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2021년 세계은행이 태평양 섬나라 3곳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구축을 추진하다 중도에 엎은 일도 있었다. 해저 케이블 분야의 강자로 급부상한 중국 HMN테크와의 계약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이 역시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다.

지난달 29일 인도 첸나이의 한 해변에서 일본 통신사 NTT 직원이 해저 케이블 구축 작업을 하고 있다. 첸나이=EPA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인도 첸나이의 한 해변에서 일본 통신사 NTT 직원이 해저 케이블 구축 작업을 하고 있다. 첸나이=EPA 연합뉴스

FT는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해저 케이블 사업에서도 중국 기업의 참여가 사실상 틀어막혔다"고 업계 임원 20명 이상을 인용해 전했다. 한 관계자는 "최근 진행 중인 2개의 케이블 구축 사업 입찰에 중국 기업은 제외하기로 투자자들이 결정했다"며 "미국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업이었는데도 정치적 이유와 자금 조달상 문제를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노골적 탄압 끝에 결국 시장에서 철수한 중국 기업도 있다. 2019년 당시 해저 케이블 시장의 15%를 점유했던 중국 기업 화웨이마린이다. 이 회사는 중국의 소규모 지역 케이블 제조업체 헝퉁에 인수된 후 'HMN테크'로 사명을 바꿨다. 최근 10년간 해저 케이블 시장은 구글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의 '디지털 패권' 야심은 계속

물론 중국도 미국에 맞서고 있다. 2015년 개발도상국의 통신·감시·전자상거래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내용의 전략적 이니셔티브를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일대일로'와 함께 인터넷 케이블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일종의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이었다는 게 FT의 평가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국영통신사 차이나텔레콤과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을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중국 해역과 남중국해에 케이블을 설치할 때는 HMN테크가 생산한 케이블을 사용하도록 압력도 넣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미중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전 세계 인터넷망의 분열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미 해군분석센터(CNA)의 에이프릴 헤를레비 선임연구원은 "최대 위험 중 하나는 네트워크가 연결되지 않고 동서로 나뉘는 준냉전 체제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짚었다.

물론 이런 우려는 과장됐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미 워싱턴 소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C)의 제임스 루이스 디렉터는 "중국인들은 인터넷을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소유하고 싶어 한다. 비즈니스를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