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강국' 주역들, 초봉은 정부연구기관 최하위
미국 나사 연봉 3억 원, 스페이스X 5억 원인데
한국은 수당 3,000만 원 못 받아서 소송 중
"노동법 지켜야", "정부가 총인건비 올려줘야"
“우리 부서에는 20대가 없어요. 대학 후배들한테 물어보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는 입사지원서도 안 쓴대요. 반도체나 자동차 회사 가면 연봉 2배 받는데 굳이 스트레스 받으면서 고난이도 업무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여기서 일하던 젊은 연구자들도 최근에 민간기업이나 다른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으로 이직을 많이 하고요. 자괴감이 들죠.”
지난달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으로 국민들의 찬사를 받은 곳, 항우연에서 일하는 한 연구원이 전한 현실이다. 항우연은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우리나라 항공우주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핵심 기관이다. 한국 최초 달 탐사선 다누리호,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개발과 발사 성공의 쾌거를 이뤄낸 곳이다. '세계 7대 우주강국’은 항우연 연구진들이 수십 년간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우주강국을 일궈낸 연구진들이 받는 대우는, 국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열악하다. 국민들의 환호에 가려져있던 그들의 고민과 한숨은 최근에야 하나씩 알려지고 있다. 항우연에서는 현재 수당 관련 소송만 두 건이나 진행되고 있다.
한국 최초 달탐사선 '다누리' 주역들, 연구수당 1억 원 못 받아
항우연이 개발해 지난해 8월 발사된 달탐사선 다누리가 12월 달 궤도 진입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7번째 달탐사국에 올랐다. 하지만 다누리 개발 주역인 달탐사사업단 연구원 16명은 연구수당 1억원을 받지 못해 소송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항우연이 2019년 1~5월 외부 점검 때문에 달 탐사 연구가 사실상 중단됐다며 수당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진들은 2020년 4월 사측을 상대로 연구수당 지급 소송을 제기했고, 대전지법은 지난해 4월 “연구업무를 수행한 것이 맞다"며 연구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1심에서 패소한 항우연은 기존 대전 지역 로펌 외에 서울의 대형 로펌인 태평양까지 추가로 선임해 항소를 제기했다. 소송 대리 비용만 수천만 원으로 추측된다. 더구나 항소를 진행한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당시 '달 탐사 사업관리위원회'를 이끌었던 연구자로 연구진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였다. 대표 원고인 송재훈 항우연 책임연구원은 “같이 달탐사사업을 했던 원장이 항소까지 해 인간적인 실망감과 배신감, 억울함 속에서 일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열린 2심 재판에서 송재훈 책임연구원이 한 최후발언에선 항우연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저희는 달을 향한 국가적인 과업을 위해 연구개발이라는 근로를 성실히 수행했을 따름"이라며 "다누리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나라 우주 개발의 새 지평을 여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저희는 연구개발이라는 엄연한 근로 대가인 연구수당을 받지 못해 3년이 넘는 지난한 법정 다툼 끝에 이 자리에 섰다"며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정부와 항우연 측이 수천만원의 소송 비용까지 내며 수당을 주지 않으는 이유는 대체 뭘까. 항우연 관계자는 “1심 재판부가 연구수당이 임금 성격을 가진다고 판결해 파장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항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원에서 연구수당이 임금으로 인정될 경우 국가연구사업 전반에서 정부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상승하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는 것이다. 2심 판결은 다음달로 예정돼 있다.
3교대·휴일근무 해도 수당 없어..."애국"만 강조
전국과학기술노조 항우연 지부에 따르면 항우연은 야간·휴일근로 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 항우연 위성연구소 위성총조립시험센터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우주환경시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국내 모든 인공위성은 발사 전 이곳에서 최종 시험을 한다. 우주환경시험은 24시간 연속 진행되기 때문에 이곳 연구원들은 3교대로 일하고, 휴일에도 시험 일정이 있으면 출근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연구원은 "야간근로 수당을 신청하는 제도 자체가 없다”며 "2017년쯤부터 관련 문제제기가 나왔고 2020년에 고용노동청 근로감독을 받은 후 사측이 수당 일부를 지급하기도 했지만 그후론 다시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간 합의도 시도했으나 결렬돼 연구원 8명은 결국 지난 4월 2019년 9월~2022년 4월까지 받지 못한 야간·휴일근로 수당 3,000만원에 대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연구원은 “우리가 원하는 건 노동법대로만 대우해 달라는 것”이라며 “하지만 역대 원장들은 노동법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고 ‘애국의 마인드로 일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 항우연의 수당 미지급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조광래 전 항우연 원장(2014~2017년 역임)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난 35년간 무수히 많은 야근·휴일 근무를 했지만 단 한 번도 돈을 요구하거나 수령한 사실이 없다. 국민 세금으로 연구하는 사람의 자존심과 명예에 관한 내용”이라고 적었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보다는 과학자로서의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야간·휴일근로 수당 미지급에 대해 항우연 관계자는 “의도적으로 수당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고 수당 관련 규정이 없었고, 그동안 휴일 근무는 노사합의로 보상휴가제도를 활용하고 있었다”며 “규정 마련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봉 꼴찌' 항우연 vs '최고의 직장' 1위 나사
항우연은 연봉도 매우 낮은 편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지난해 항우연 대졸 초임은 3,800만 원 정도로 과기정통부 산하 25개 출연연구기관(출연연) 중 21번째로 임금이 낮았다. 항우연 보다 초봉이 낮은 곳은 부설 연구소 형태인 안전성평가연구소, 세계김치연구소 등이다. 석·박사 연구원의 초봉(석사 4,300만 원, 박사 5,000만 원) 역시 낮은 편이다. 익명의 연구원은 "박사 출신 출연연 연구자가 학사 출신 대기업 연구자보다 적게 받는다"며 "출연연 중에서도 연봉 제일 낮은 곳이 항우연이라 좋은 인력은 아예 이쪽으로 올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신명호 항우연 지부장은 “항우연은 기계공학, 전기전자 관련 전공자들이 많이 필요한데 이런 전공자들은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필요로 하는 인력”이라며 “한국원자력연구원만 가도 연봉이 1,000만 원 더 높은데 비슷한 일 하면서 굳이 항우연으로 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도 한 합격자가 연봉이 너무 적다며 입사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전했다.
과거에 입사한 연구원들은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았지만 최근 입사자일수록 임금이 낮아져 20대~40대 초반 연구원들의 연봉이 특히 낮다. 이에 항우연에서 일하던 젊은 연구원들이 연봉이 높은 민간기업이나 정년이 보장된 대학 등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의 항우연과 같은 역할을 하는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최고 수준 연구원들은 기본 연봉이 약 2, 3억 원이다. 나사는 미국 연방정부 대형기관 중 10년 연속 '최고의 직장'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김승호 인사혁신처장은 지난달 나사의 인재 채용 노하우 등을 배우겠다며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미국의 우주탐사 기업인 '스페이스X'는 석사 출신 초봉이 약 5억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야간·휴일근로 수당 관련 규정조차 없어서 이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게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기획재정부 총인건비 규제 → 저임금, 수당 미지급 악순환
항우연 연구원들은 대체 왜 이토록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는 걸까. 항우연 연구원들의 인건비는 기획재정부에 의해 통제된다. 매년 인건비 총액을 정해 그 안에서만 사용하도록 한다. 이 총액 자체가 낮은데다, 야간·휴일근로 수당도 이 안에서만 지급하게 돼 있어 수당을 받으면 임금이 줄어드는 구조다. 게다가 항우연이 사업을 많이 해 기재부가 정한 총액보다 많은 돈을 벌어와도 기재부가 정한 총액외에는 한 푼도 인건비로 쓸 수 없다.
지난해 항우연의 낮은 처우 문제가 외부로 알려지며 인건비 총액을 증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기재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신명호 지부장은 "기재부가 추가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총인건비 한도만 높여주면 우리가 수탁과제 등으로 확보한 초과 인건비, 결산잉여금으로 인건비를 채워 임금을 높이겠다고 했는데 이 마저도 거부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총인건비 증액, 잔여인건비의 수당 사용 허가 등 인건비 구조를 해결하지 않으면 항우연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간·휴일근로 수당 미지급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최종연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변호사는 “총인건비 규제를 완화해 법정초과근로수당, 연차미사용수당, 보상휴가 정산에 관해서는 총인건비 예외로 폭넓게 인정해줘야 근로조건이 개선될 수 있다"며 "그렇지 않고선 이런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항우연에 대한 인건비 규제를 완화하지 않는 한 연구원들의 낮은 처우와 이에 따른 인력 유출, 인재 확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항우연 관계자는 “25개 출연연 중 항우연만 임금을 올려주기는 정부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우주 개발을 사명감만으로 할 수는 없고, 좋은 인력을 영입하려면 처우를 개선하는 방법밖에 없으므로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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