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자폭·대선 미국 개입론 주장해
비명계 "편중된 인사" 지도부 책임론
이재명 "정확한 내용 몰랐던 것 같다"
혁신위 시작 전부터 삐끗... 내홍 조짐
이래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5일 ‘자폭한 천안함’ ‘미국의 대선 개입설’ 등 발언 논란으로 선임 발표 당일 사의를 표명했다. 잇단 도덕성 논란으로 당의 혁신을 주도할 외부인사에 대한 검증 부실은 물론, 그가 친이재명계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인사권자인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이 또 한 번 상처를 입은 셈이다. 그간 혁신위 인선과 역할을 두고 이견을 보여온 친이재명계와 비이재명계 간 갈등도 보다 격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과거 발언) 논란의 지속이 공당인 민주당에 부담이 되는 사안이기에 혁신기구의 책임자직을 스스로 사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위원장의 선임을 발표한 지 아홉 시간 만에 낙마한 것이다. 이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고위전략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임하시겠다고 해서 본인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 민주당의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것에 일조하겠다는 일념으로 혁신기구의 책임을 어렵게 맡기로 했다"면서도 "사인(私人)이 지닌 판단과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의 대상이 된 것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됐던 천안함 자폭 발언 등에 대해 철회할 뜻은 밝히지 않았다.
"자폭된 천안함" 발언 등에 비명 인선 철회 요구 분출
그의 사의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실상 예견된 바였다. 당내 별다른 의견 수렴 없이 지도부가 선임한 데다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천안함 자폭설' '미국의 대선 개입설' 등 국민 인식과 거리가 있는 주장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비명계 중진들을 중심으로 인선 철회 요구가 분출했다. 홍영표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은 지나치게 편중되고, 과격한 언행과 음모론 주장 등으로 논란이 됐던 인물"이라며 지도부에 내정 철회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상민 의원은 "이래경이라는 분의 혁신위원장 선정을 두고 당내 논의도, 검증도 전혀 안 됐다"며 "오히려 이재명 대표 쪽에 기울어 있는 분이라니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김종민 의원은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국민의 민주당'으로 가는 게 혁신"이라며 "민주당이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시키자고 결심했다면 모를까, 민심을 조금이라도 의식한다면 (이 위원장 선임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 안팎의 싸늘한 반응에 지도부의 기류도 급변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 위원장의 과거 발언에 대해 "시민의 일원으로서 개인적으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한 것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며 "공당의 혁신위원장이 되면 언어에 대한 조절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본다"며 엄호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천안함 자폭' 주장에 대해 "저희가 정확한 내용을 몰랐던 것 같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발표(북한의 폭침에 의한 사고)는 공식 발표이고, 저는 그 발표를 신뢰한다"고 덧붙였다. 현충일을 하루 앞서 임명된 인사의 과거 발언이 알려지면서 당내뿐 아니라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발언으로 읽히는 대목이었다.
오후 고위전략회의는 사실상 이 위원장의 거취를 논의한 자리였다. 권 수석대변인은 고위전략회의 직후 "이 위원장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고, (이 대표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에 직접 언급은 없었지만, 사실상 이 위원장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나는 것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논의 없는 임명에 '인사 참사'… 지도부 책임론 불가피
특히 이 위원장이 인사권자인 이 대표를 지지해온 친이재명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당 혁신을 위해 전권을 부여한 외부인사가 알고보니 이 대표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점에서 비명계의 의구심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이 위원장은 2019년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을 당시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페이스북에도 이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을 비교하며 이 대표를 지지하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다.
이 위원장의 하루 만의 낙마는 이 대표의 리더십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이상민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이 위원장이 물러나는 문제로 끝날 게 아니라 이 위원장을 추천한 이 대표와 검증을 소홀히 한 지도부와 최고위원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향후 혁신위원장 인선과 권한을 두고 이 대표를 향한 비명계의 요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원일 전 함장, 이재명 겨냥 "현충일 선물 잘 받았다"
한편, 최원일 전 천안함장은 이 위원장의 '천안함 자폭' 글과 관련해 이 대표를 거명하며 "현충일 선물 잘 받았습니다. 오늘까지 입장을 밝혀주시고 연락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해촉 등 조치 연락 없으면 내일 현충일 행사장에서 천안함 유족, 생존 장병들이 찾아뵙겠다"며 "내일 만약 참석 않으시면 그다음은 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썼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장고 끝에 악수'라더니 고작 이런 문제 인물에게 제1야당의 미래를 맡기겠다고 시간을 끌었던 것이냐"며 "이 위원장의 임명으로 '국민께 외면받는 민주당'으로 가도록 재촉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도 "당내 리스크를 바로잡고 당을 혁신하기 위한 기구의 장이, 당대표에게 편향된 인사라는 자체가 '고이고 고여버린' 민주당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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