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공공의창·돌봄서비스노조 인식 조사
보호사 60% "성희롱 당해"… 언어폭력은 80%
문제 제기하면 "왜 매뉴얼 어겼냐"며 책임 전가
"와서 키스나 해 주고 가. 아니면 마사지 좀 해 주던가."
인천의 한 민간요양시설 요양보호사 A씨는 입사 초기에 먼저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라며 살갑게 다가가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성 입소자가 다급하게 불러서 갔더니 돌아온 건 성추행이었다. 이미영 민주노총 산하 돌봄서비스노조 인천지부장은 "성희롱, 성추행은 보호사들이 늘 겪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서대문구 돌봄서비스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요양보호사들은 폭력을 당해도 혼자 삭히며 털어버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시설이나 기관에 도움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건 '알아서 조심하셨어야죠'란 다그침이라 오히려 더 큰 상처만 남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성희롱은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할 일상이 되고 말았다. 보호사들에게 신체 특정 부위를 얘기하고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성적인 말을 서슴지 않게 꺼낸다. 입소 노인들의 기저귀를 갈거나 건강을 체크할 때는 성추행 대상이 된다. 요양보호사 B씨는 "혈압을 재려고 하면 어느새 어르신의 손이 가슴이나 엉덩이로 온다"고 말했다.
42.6% "성폭력 당해"… 35% "신체폭력 자주 당한다"
한국일보가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돌봄서비스노조와 함께 요양보호사 1,216명을 대상으로 근무 환경을 조사한 결과, 많은 보호사가 잦은 성희롱과 성추행, 폭행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 4월 17~20일 우리리서치가 진행했다.
입소자에게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절반이 넘는 58.7%가 '있다'고 답했다. 5명 중 1명은 '자주 있다'고 했다. 근무 중 성희롱을 당한 적이 없다고 답한 보호사는 28.3%에 그쳤다. 성폭력은 42.6%가 자주 당하거나 간혹 당한다고 응답했다.
폭행 역시 다반사였다. 이날 만난 보호사 C씨의 이마는 붉게 부어있었고 팔 곳곳에 멍이 들어있었다. 전날 조현병에 걸린 노인을 씻기다 온몸을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었다. C씨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조현병 환자는 요양병원이나 정신병원에 가는 게 맞지만, 많은 요양원의 현실이 이럴 것"이라며 "이분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면 나이 많은 여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번 조사에서 보호사의 65.1%가 신체적 폭력에 대해 '경험이 있다'고 했는데, 35%는 '자주 당한다'고 했다. '전혀 없음'은 27.2%에 불과했다. 언어폭력은 이보다 많은 80%가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폭력당해도 외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요양보호사
신체, 언어, 성폭력 등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느냐고 물었더니 '개인적으로 참고 넘어감'이 36.6%로 가장 많았다. '요양기관에 보고하고 대응조치 요구'는 34.3%, '이용자나 보호자에게 직접 이의 제기'는 5.3%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고'는 1%도 되지 않았다. 근무 중 질병·사고로 치료한 경험을 묻자 52.6%가 '있다'고 했는데, 이들 가운데 74.8%는 '개인 비용으로 처리했다'고 답했다.
그저 참고 넘어가는 건 시설과 기관 모두 외면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매뉴얼'을 꺼내 들며 "왜 2인 1조로 움직이지 않았느냐'는 질타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보호사 D씨는 "사전에 이상징후를 보고하면 모두 모르는 체하다가 사고가 나면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며 책임을 보호사에게 떠넘긴다"고 토로했다. C씨는 "일이 너무 많아 혼자서 빨리 처리하는 게 낫지 2인 1조로 움직이기 힘들다"며 "현실은 모른 척하고 문제가 생기면 보호사는 절대 지켜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은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리서치DNA·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티브릿지·한국사회여론연구소·휴먼앤데이터·피플네트웍스리서치·서던포스트·메타서치·소상공인연구소·PDI·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5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분석 기관이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뜻을 모아 2016년에 출범했다. 정부·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는 '의뢰자 없는' 조사를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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