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상 첫 미국 반도체 기업 제재
미중 대화 재개 앞둔 힘겨루기 본격화
'마이크론 공백'에 한국 기업들 '곤혹'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첫 제재를 단행하면서 '미중 반도체 전쟁'이 새 변곡점을 맞았다. 중국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폐막일에 맞춰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의 제품 구매 금지령을 내렸다.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격 개시였다. 미국은 "근거 없는 제한이며 동맹과 함께 대응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고위급 대화의 본격적 재개에 앞서 양국 모두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며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는 기습적이었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21일 "마이크론 제품 심사 결과,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며 중요 정보 인프라 운영자를 대상으로 이 회사 제품 구매를 중지하도록 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19~21일 열린 G7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 등 서방이 '중국의 경제적 강압 공동 대응을 위한 플랫폼' 창설을 천명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로 응수한 것이다.
"마이크론, 중국 시장서 퇴출될 수도"
이번 조치는 미국이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를 계속 이어 간다면, 미국도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 기업에 대한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YMTC 등 36개 중국 기업을 수출통제 명단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주요 동맹국들의 동참도 이끌어냈다.
중국은 3월 31일 마이크론에 대한 첫 안보 심사 개시로 반격을 예고했다. 메모리 분야 세계 3위 업체인 마이크론의 지난해 중국(홍콩 포함) 시장 매출 규모는 308억 달러다. 전체 매출액의 4분의 1에 달한다. 결국 이번 제재는 마이크론 입장에선 매출이 25%나 급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마이크론이 중국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미국도 피를 볼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었고, 마이크론이 반도체 전쟁에 있어 미국의 첫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제재 시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미중 간 고위급 대화 재개를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1일 G7 정상회의 폐막 후 기자회견에서 지난 2월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영공 침범 사태로 냉각된 미중 관계를 거론하며 "가까운 시일 안에 해빙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무역·군사 등 전 분야에서 중국과의 고위급 대화를 통해 긴장 완화를 추구한다는 바람을 피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G7 정상회의로 재확인된 서방의 단합을 무기 삼아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중국으로선 미국 반도체 기업을 제재할 수 있다는 역량을 과시, 향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미 "동맹과 대응"... 중 "한국의 수출 막지 말라"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셈법은 복잡해지게 됐다. 가뜩이나 치열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공백'이 생긴 건 언뜻 한국 기업엔 호재로 비칠 법하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복잡한 역학 관계상 현실은 다르다.
FT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중국이 마이크론의 자국 내 반도체 판매를 금지할 경우 한국 반도체 기업이 그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이 중국 시장에서 사라져도 중국의 반도체 수급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데 한국 기업이 협조하진 말라는 압박이었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는 2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마이크론 반도체 제품에 대한 중국의 근거 없는 제한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시장 왜곡 해결을 위해 주요 동맹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즉각 경계하고 나섰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내 마이크론 제품 감소분을 한국 기업이 채워 주지 말라고 미국이 요구할 가능성에 결연히 반대한다"며 "미국의 그런 행위는 자신의 패권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타국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도록 협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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