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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스트레스가 트라우마는 아니다

입력
2023.05.20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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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출근을 시작한 날부터 팀장에게서 업무 훈계를 반복해 듣다 보니 불안감 때문에 직장 가기가 두려워지고 공황 증상이 나타났다.” “새로 이사간 동네에서 부녀회 일에 참여했다가 텃세를 부리는 이웃 사람들이 뒷말을 하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서 부정맥 진단을 받은 데다 울분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마침 갱년기여서 우울증까지 심해졌다.”

얼마 전 클리닉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다. 이들 두 사람 모두 ‘그 인간’에게 갑질을 당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면 감정을 자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끝없는 자괴감과 자기 연민에 빠져서 오랫동안 외상후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떠나가고 반복적인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느라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만 남는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나쁜 일들은 남 탓이라 여기는 투사(投射)에 의존하며 상황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힘든 삶의 순간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수준의 고통과 후유증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같은 일을 겪은 후 오히려 인간적으로 더 성숙하는 이도 있다. 외상을 겪고 성장하는 이들은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작은 일들에 매일 감사한다.

옆에서 보기에도 영적ㆍ실존적으로 풍부한 삶을 살아간다. 알지 못했던 타인들의 특성을 알게 되어서 진실하고 선한 사람과 필요할 때만 잘하는 사람을 구분할 줄 안다. 일을 할 때는 타인을 이용하기보다 자신의 역할을 다함에 충실한 분들이다. 외상 후 성장을 한 사람인 것이다.

모든 스트레스 사건이 트라우마는 아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어쨌든 극복해낼 수 있는 어려움 혹은 역경(adversity)인 경우가 더 많다. 황망한 순간을 분노의 감정으로 함께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공감을 가장한 그들의 목적은 본인들의 이익인 경우가 많으며, 고통 속에 영원히 가두어 두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인간은 서로 다른 수준의 회복력(resilience)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스트레스를 견디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능력을 결정한다. 회복력의 요소 중 첫째는 감정과 충동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슬픔과 분노에 빠져 뇌 전두엽이 마비되면 감정의 격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현실에 기반한 미래의 합리적인 기대, 즉 낙관성이다. 셋째 요인은 과거의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합한 자기효능감이며, 쉽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이때 가정과 사회에서 받는 지지와 우호적인 인간관계는 이를 북돋아두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극복하고 살겠다는 결심을 할 때 좋은 회복력이 생겨난다고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일들을 트라우마로 간주하지 말기를 바란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서로 다른 개념이며, 나 자신이 그 경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그저 인생에서 거치는 역경 혹은 장애물로 그칠 때가 많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내 마음에 작은 상처를 입은 수준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좀 쉬거나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상처가 회복되면 오히려 더 단단해진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회복력을 발휘하여 삶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매일 성장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다.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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