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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의 채택과 결단의 시간

입력
2023.05.22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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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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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가던 곳에 가고, 자주 먹던 것을 먹고, 하던 일을 계속하며 일상을 산다.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일을 하는 데에 우리는 의외로 익숙하지 않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USC 교수를 지낸 에버릿 로저스(Everett Rogers)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테크놀로지, 상품이 사회에서 채택되고 활용되는 과정과 조건에 대해 연구했다. 그의 초기 연구에 의하면 새로운 아이디어의 초기 채택자(early adopter)는 불과 13.5%다. 로저스는 혁신이 가져오는 상대적 이익, 가치의 지속가능성, 복잡성, 실험가능성, 관찰가능성을 초기 채택의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시대적 상황은 다르지만, 이 연구가 현재 우리 사회의 변화에 주는 시사점은 여전히 크다.

새로움을 채택하는 첫 단계는 현재의 불편함에 대한 분명하고도 절실한 자각이다. 불편함이 없다면 굳이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새로운 장소에 이주해 사는 일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이유도 없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 정책을 시도할 이유도 없다. 개인도 국가도 현재의 편안함에 안주하고 위기감을 느끼지조차 못하고 불편함을 애써 외면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미래는 없다.

꽤 오래전부터 학생들에게 우리 일상과 사회의 불편함을 찾아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소비자 혹은 시민의 불편함을 해결할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현재의 편안함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왔다. 이것이 없이는 개인의 발전도, 사회의 진보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2023년 인류사회가 당면한 지구 온난화와 환경위기, 제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압도하는 사회, 국제정치와 경제 질서의 재편성 문제에 모두가 동감한다. 국가적으로는 학교의 위기와 교육혁신, 노동과 일의 개념과 정책의 재정립, 고연령·저출산 시대의 사회복지와 연금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점에도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이슈의 본질과 절실함을 외면하고, 새로운 문제 제기와 새로운 처방이 우리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결단을 미루는 것이다. 불편함을 절실히 체감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것에 대한 혜안이 없거나, 다수의 시선을 의식해 결단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 모든 이유로 인해 새로운 것에 대한 채택의 시간은 계속 늦춰지고 있다.

로저스에 의하면 새로운 아이디어의 혁신가(innovator)는 불과 2.5% 정도다. 소수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새로운 판을 만들면 이를 초기 채택자가 따르고, 다수 소비자와 시민은 그 뒤를 따르게 된다. 혁신가와 초기 채택자는 사회의 책임감 있는 리더로서 다수 소비자와 시민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전진의 속도가 늦춰져서는 안 된다.

지난 5월 16일 국가교육위원회 대토론회는 미래교육 혁신의 핵심이 대학입시제도라는 공감대를 확인한 자리였다. 이제 불편함이 극에 달해 혁신의 필요성에 공감이 이뤄졌음은 매우 고무적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불필요하게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불편함이 심각하다면, 주관식 시험문제의 부분적 도입, 국제바칼로레아(IB) 도입,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래인재 발굴과 양성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개별 대학에 위임하는 등 구체적 혁신 방안을 바로 찾고 시행해야 한다.

새로움을 채택하고, 이에 익숙해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반드시 가야 한다. 혁신가와 초기 채택자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비전과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면 내리기 힘든 결단이다. 대통령과 정치인의 역량을 검증할 시금석이기도 하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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