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충됐지만 충전선 잠금, 다른 차 충전 못해”
“인상 요금 충전 인프라 확충 쓰면 갈등 해소”
“장애인 주차구역처럼 단속하면 질서 잡힐 것”
충전이 다급한 전기차 운전자들이 이른바 ‘전기차 주차 빌런(악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기차 운전자는 날로 늘고 있지만, 이들을 속 터지게 하는 주차 빌런의 행태는 갈수록 지능화하거나 뻔뻔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완충 이후 주차료를 대폭 올리고, 다른 차량에 대한 이들의 충전방해 행위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전기차가 없는 차종인 ‘카니발’ 차량이 주유구에 충전선을 연결한 채 전기차 충전구역에 주차를 한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전기차 운전자가 분통을 터트리는 주차 빌런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전기차 동호회 카페에 따르면 완충이 됐는데도 80시간 넘게 전기차 충전구역에 주차 중인 차량이 목격되기도 했다. A씨는 지난 7일 이 카페에 올린 글에서 “전기차 완속 충전구역에서 총 80시간 충전한 차량 사진 3장을 찍어 신고했다”며 “(해당 차주의) 주차 매너가 바뀌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에 따라 완속충전기에 14시간 이상 주차할 경우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게시자가 해당 차량을 위법으로 신고했다는 뜻이다. B씨는 이 카페에 11일 ‘역대급 빌런을 보았다’는 글과 함께 67시간 넘게 충전 중인 한 전기차의 충전 현황을 보여주는 사진과 함께 “저건 어떻게 신고하나”라고 묻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충전선 안 꽂은 PHEV 14시간 주차에 충전 못했다”
전기차 충전구역에서 충전선은 차량의 충전구에 꽂았지만 충전을 하지 않거나, 아예 충전선을 연결하지도 않은 채 시간을 보내는 차량도 ‘주차 빌런’으로 손꼽히고 있다. C씨는 지난달 23일 이 카페에서 “아파트에 충전기 4대가 있는데 완충하고도 충전선에 록(잠금)을 걸어 놓고 충전구역에서 차를 빼지 않는 빌런들 때문에 충전을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D씨는 지난달 13일 이 카페에서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가 많아져서 정말 짜증이 난다”라며 “충전도 안 하는데 전기차 칸에 주차하는 PHEV는 어떻게 해야 하나. 충전선을 꽂지도 않고 (전기차 충전구역을) 그냥 주차공간으로 쓰는 빌런이 있다”고 했다.
PHEV의 경우 통상 3~4시간이면 완속으로 완충된다. 하지만 친환경 자동차법 시행령에 따라 다른 전기차와 똑같이 14시간의 충전구역 주차를 보장받는다. 이와 관련해 충전이 다급한 전기차 운전자의 원성을 사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이다. 이 카페에는 D씨 외에도 PHEV를 ‘공공의 적’이라며 성토하는 전기차 운전자들이 많았다.
“고속도로 휴게소 충전구역은 상용차가 배턴 터치”
고속도로 휴게소 내 주유소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구역에서 장기 주차 중인 전기 트럭·마이크로 버스 등 상용차도 장거리 운행 중 충전이 다급한 전기차 운전자에게 주차 빌런으로 꼽힌다. E씨는 지난달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봉고ev, 포터ev가 고속도로 휴게소 충전기 점령 중”이라며 전기 상용차로 가득찬 고속도로 휴게소 내 주유소의 전기차 충전구역 사진을 게시했다. 그는 “전기 포터 (운전자)들이 (SNS에서) 단톡방(단체 대화방)을 만들어서 충전기 배턴 터치한다고 함”이라고 전했다. 지난 7일 전기차 동호회 카페에 올라온 동일한 사진에 한 전기차 운전자도 댓글을 통해 “고속도로 충전기의 화물전용 분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포터Ⅱ 일렉트릭’의 충전시간은 80%까지 급속은 54분, 완속은 9시간 30분에 이른다.
“완충 후 주차료 올리고, 단속 강화해야”
이 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완충 후 충전구역에 계속 주차하는 전기차의 주차료를 크게 올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이다. 인상한 요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근본적 문제 해결방안이란 얘기다. 이는 과충전으로 인한 화재 예방에도 효과가 크다는 설명이다. 전기차 운전자 사이에서는 현재 14시간까지 보장하고 있는 충전구역의 전기차 주차시간도 완충 시까지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충전구역의 완충 이후 주차료를 과도하게 올린 뒤 한국전력공사가 기금을 조성해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에 쓰면, 공동주택 인구과밀 지역의 전기차 충전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전기차 충전은 배터리 용량의 85%까지만 할 경우 과충전으로 인한 화재 발생 위험성 90%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구역에 주차하는 일반차량·주차 14시간 이후 전기차량의 단속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이들 차량에 대해서는 장애인 주차구역에서와 같은 상시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시민들이 행정안전부 ‘안전신문고’ 응용소프트웨어(앱)를 통해 신고할 경우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운전자들이 전기차 충전구역이 비어 있는 곳에 주차를 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단속은 장애인 주차구역에 비해 소홀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시민들이) 단속대상을 적극 신고하고, 지자체가 적극 단속하면 질서가 잡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주변 공원, 공공주차장에 충전 인프라 늘려야”
무엇보다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부합하는 충전 인프라를 꾸준히 확충해야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 주차공간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확충해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현재와 같이 주유소 내에만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만들 일이 아니란 지적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전기차 충전구역 주차면을 내연기관 차량 주차면보다 넓게 설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기존 주차면 5개를 합쳐 4개 주차면 정도로 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해, 전기차 충전에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기차는 차종마다 충전구 위치가 제 각각이어서 내연기관 차량 주차면 크기의 공간에서는 충전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고정식 충전선과 차량 충전구의 거리가 먼 경우가 있고, 충전선 연결을 위해 사람이 들어갈 틈은 좁기 때문이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국같이 국토가 넓고 주택 거주자가 많은 경우에는 각자 집에서 밤새 완속 충전을 하는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에 전기차 충전에 별다른 사회적 갈등이 없지만, 우리는 국토가 좁고 공동주택 거주자가 많아 충전기를 공유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때문에 주거단지 주변의 공원, 공영주차장 등지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는 제도 보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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